백신의 탄생과 진화: 천연두에서 COVID-19까지
인류의 역사는 감염병과의 끊임없는 전쟁이었다. 흑사병, 콜레라, 천연두와 같은 질병들은 문명의 흥망을 좌우할 만큼 강력한 위협이었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 인류가 찾아낸 가장 위대한 빛 중 하나가 바로 백신이다. 백신은 질병을 정복하는 방식을 수동적인 치료에서 능동적인 예방으로 전환시킨 의학사 최대의 혁명이다.
예방의학의 서막: 에드워드 제너와 천연두 백신
백신의 역사는 18세기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유럽을 휩쓸던 천연두는 감염 시 치사율이 40%에 달하는 끔찍한 질병이었다. 제너는 소젖을 짜는 여성들이 소의 가벼운 질병인 우두(cowpox)에 걸린 뒤에는 치명적인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이 관찰에 기반하여 그는 1796년, 한 소년에게 우두 고름을 접종한 뒤 의도적으로 천연두균에 노출시키는 대담한 실험을 감행했다.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고, 인류 최초의 백신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제너가 창시한 이 방법을 ‘종두법(vaccination)’이라 부르는데, 이는 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한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이전에도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이용하는 ‘인두법(variolation)’이 있었지만, 이는 실제 천연두를 약하게 앓게 하는 방식이라 위험성이 컸다. 제너의 종두법은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예방의학의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노력은 전 세계적인 협력으로 이어져,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가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거둔 유일한 완전한 승리인 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
한국에 종두법이 도입된 것은 구한말 의학자 지석영(池錫永)의 공이 컸다. 그는 부산의 일본인 의사에게서 종두법을 배워 1879년 자신의 처남에게 성공적으로 접종했다. 초기에는 사람들의 불신과 저항에 부딪혔으나, 그의 끈질긴 설득과 노력으로 점차 신뢰를 얻었다. 1885년에는 『우두신설』을 저술하여 종두법을 체계적으로 보급했고, 이는 훗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 설립 등 서양 의학 도입의 기틀을 마련했다. 제너와 지석영의 사례는 위대한 의학적 발견이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과학적 성취뿐만 아니라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한 소통과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이는 오늘날 백신 주저 현상을 해결하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 백신학의 황금기: 소아마비, 홍역을 정복하다
제너의 발견 이후, 백신 개발은 20세기에 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1909년 결핵 예방을 위한 BCG 백신이 개발되었고 , 1949년 세포 배양 기술이 확립되면서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증식시킬 수 있게 된 것이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 기술 덕분에 조너스 소크(Jonas Salk)의 소아마비 사백신(1955년)과 앨버트 세이빈(Albert Sabin)의 경구용 생백신(1961년)이 연이어 개발되어 한때 전 세계 아동을 공포에 떨게 했던 소아마비를 거의 퇴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미주 대륙은 1994년, 유럽은 2003년에 소아마비 박멸을 선언했다.
마찬가지로 1954년 바이러스 분리에 성공하여 개발된 홍역 백신은 한때 흔한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던 치명적인 감염병의 발병률을 극적으로 낮추었다. 이처럼 체계적인 과학 연구와 대규모 공중보건 캠페인이 결합된 ‘백신학의 황금기’는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추산에 따르면 1963년 이후 백신은 천만 명 이상의 사망을 예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백신의 성공이 실험실에서의 과학적 진보와 이를 전 세계적으로 보급하는 공중보건 시스템의 역량이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됨을 보여준다.
팬데믹이 앞당긴 혁신: COVID-19 시대의 백신 개발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COVID-19 팬데믹은 백신 개발의 역사를 새로 썼다. 통상 10년 이상 걸리던 개발 기간을 1년 미만으로 단축시킨 전례 없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는 기적이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과학 기술과 전 지구적 협력이 낳은 필연적 결과였다.
이러한 신속 개발의 배경에는 몇 가지 핵심 요인이 있다. 첫째, 사스(SARS)와 메르스(MERS) 같은 이전의 코로나바이러스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의 특성과 백신 표적(스파이크 단백질)에 대한 기초 지식이 이미 확보되어 있었다. 둘째, mRNA와 바이러스 벡터 같은 ‘플랫폼 기술’이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다. 과학자들은 1961년 mRNA를 발견했고 2005년부터 백신 활용법을 연구해왔다. 이러한 플랫폼 기술은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만 확보되면 신속하게 백신을 설계할 수 있는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과 같았다. 셋째, 미국 정부의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과 같은 막대한 공적 자금 지원과 국제적 협력은 제약사들이 임상시험과 대량 생산을 동시에 진행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게 했다.
COVID-19 백신 개발의 성공은 미래의 팬데믹 대응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었다. 감염병예방혁신연합(CEPI)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 팬데믹 발생 시 100일 안에 백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100일 미션’을 제시했다. 이는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처음부터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미래 공중보건 안보의 핵심 전략임을 의미한다.
백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면역학적 원리와 종류
백신은 우리 몸의 정교한 방어 시스템인 면역계를 활용한다. 질병을 직접 앓지 않고도 안전하게 면역력을 형성하게 하는 백신의 원리는 면역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소(Cow)’에서 유래한 이름, 백신의 어원과 면역 기억의 원리
백신 접종의 핵심 원리는 병원체(pathogen)의 일부 또는 약화된 형태인 **항원(antigen)**을 인체에 미리 노출시켜 면역계가 이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군대와 같다. 처음 겪는 적(항원)을 만나면 전투(1차 면역반응)를 치르며 적의 정보를 파악하고 무기(항체)를 만든다. 이 과정은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번 싸워본 적에 대해서는 ‘기억’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된다.
이 기억의 실체는 **기억 B세포(memory B cell)**와 **기억 T세포(memory T cell)**라는 특수 면역세포다. 이 세포들은 수년에서 평생 동안 우리 몸에 남아 있다가, 과거에 침입했던 진짜 병원체가 다시 들어오면 즉각적으로 깨어나 훨씬 빠르고 강력한 2차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비유하자면, 백신은 면역계에 범인의 ‘몽타주’를 보여주며 모의 훈련을 시키는 것과 같다. 덕분에 실제 범인이 나타났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즉시 체포하여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다.
여기서 B세포와 T세포의 역할은 조금 다르다. B세포는 주로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 ‘항체’를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T세포는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찾아내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 두 가지 방어선이 모두 튼튼해야 효과적인 면역이 형성된다. COVID-19 오미크론 변이의 사례는 T세포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백신 접종으로 형성된 항체는 변이 바이러스의 감염을 완벽히 막지 못할 수 있지만, 기억 T세포는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여 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준다. 즉, 백신의 진정한 가치는 모든 감염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설령 감염되더라도 심각한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차세대 백신의 주역들: 바이러스 벡터, 핵산, 단백질 재조합 백신 비교 분석
현대 백신 기술은 과거의 약독화/불활화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전공학 기술을 활용하여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차세대 백신 플랫폼은 다음과 같다.
- 바이러스 벡터 백신 (Viral Vector Vaccines) 인체에 무해한 아데노바이러스 등을 ‘운반체(vector)’로 사용하여, 표적 병원체의 항원 유전자(DNA)를 우리 세포 안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세포는 이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항원 단백질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이를 인지한 면역계가 항체와 T세포를 모두 활성화시킨다. 아스트라제네카, 얀센의 COVID-19 백신이 여기에 해당한다. 강력하고 폭넓은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장점이 있지만, 운반체 바이러스에 대한 기존 면역이 있으면 효과가 감소할 수 있고, 매우 드물게 혈소판 감소성 혈전증과 같은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다.
- 핵산 백신 (Nucleic Acid Vaccines – mRNA & DNA) 병원체 자체가 아닌, 항원을 만드는 ‘설계도(유전 정보)’를 직접 주입하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 mRNA 백신: 화이자, 모더나 백신으로 잘 알려진 이 기술은 항원 단백질(예: 스파이크 단백질)의 유전 정보가 담긴 mRNA를 지질나노입자(LNP)라는 지방 막으로 감싸서 세포에 전달한다. 세포 내 소기관인 리보솜이 이 mRNA 정보를 읽어 항원 단백질을 생산하면 면역반응이 유도된다. mRNA는 세포핵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므로 인간의 DNA를 변형시킬 위험이 전혀 없으며, 수일 내에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사라진다. 유전 정보만 있으면 매우 신속하게 개발 및 생산이 가능하고, B세포와 T세포 면역을 모두 강력하게 유도하는 장점이 있다. 다만, mRNA 자체가 불안정하여 초저온 보관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 DNA 백신: mRNA보다 안정적인 DNA 플라스미드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생산이 더 쉽고 저렴하다. 하지만 DNA가 세포막과 핵막을 모두 통과해야 mRNA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면역원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한계가 있다.
- 단백질 재조합(소단위) 백신 (Protein Subunit Vaccines)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효모나 곤충 세포 등에서 항원 단백질 자체를 대량 생산한 뒤, 이를 정제하여 면역반응을 증강시키는 **면역증강제(adjuvant)**와 함께 인체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노바백스 COVID-19 백신, 자궁경부암(HPV) 백신이 대표적이다. 유전물질을 포함하지 않고 단백질 성분만 사용하므로 안전성이 매우 높고, 냉장 보관이 가능해 유통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mRNA 백신에 비해 개발 및 생산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T세포 반응 유도가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다.
생애 주기에 따른 예방접종 전략
백신은 특정 연령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도구다. 연령과 생활 환경,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백신이 달라지므로 시기에 맞는 접종 전략이 필요하다.
건강한 성장의 첫걸음: 소아 표준 예방접종
영유아기는 면역 체계가 미성숙하여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시기다. 따라서 표준 예방접종 일정에 맞춰 접종을 완료하는 것은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첫걸음이다. 대한민국 질병관리청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소아에게 꼭 필요한 백신들을 국가예방접종사업(NIP)으로 지정하여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는 결핵(BCG), B형간염(HepB),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DTaP), 폴리오(IPV), b형헤모필루스인플루엔자(Hib), 폐렴구균(PCV),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MMR) 등이 포함된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접종을 완료하는 것은 아이 개인의 건강을 지킬 뿐만 아니라, 아직 접종받지 못한 다른 아이들과 지역사회 전체를 보호하는 ‘집단면역(herd immunity)’ 형성에도 기여한다.
주: 위 표는 요약본이며, 백신 종류 및 이전 접종력에 따라 세부 일정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질병관리청 예방접종도우미 누리집 또는 의료기관과 상담이 필요하다.
성인 건강의 방어선: 연령 및 위험군별 권장 접종
백신 접종은 소아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신으로 얻은 면역력이 약해지거나, 나이가 들면서 특정 질병에 대한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성인도 시기에 맞춰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소아 예방접종이 표준화된 프로그램에 따라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성인 예방접종은 개인의 연령, 기저질환, 생활 습관, 직업 등을 고려한 맞춤형 위험 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주요 성인 권장 백신은 다음과 같다.
-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Tdap/Td): 10년마다 추가 접종이 필요하다.
-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가 매년 변이하므로 65세 이상 고령층, 만성질환자, 임신부 등 고위험군을 포함한 모든 성인이 매년 1회 접종받는 것이 권장된다.
- 폐렴구균: 65세 이상 모든 성인과 만성 심장/폐/간 질환, 당뇨병 등을 앓는 고위험군에게 권장된다.
- 대상포진: 면역력이 떨어지는 50세 이상 성인에게 권장된다.
-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자궁경부암 및 관련 암 예방을 위해 성 경험 시작 전 청소년기에 접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나, 젊은 성인에게도 접종이 권장된다.
- A형/B형 간염: 만성 간 질환자나 특정 생활 습관을 가진 고위험군에게 권장된다.
세계를 안전하게 여행하기 위한 필수 백신
해외여행은 국내에서는 드문 감염병에 노출될 위험을 동반한다. 따라서 여행지의 감염병 유행 정보를 미리 확인하고 필요한 예방접종을 받는 것은 안전한 여행의 필수 조건이다. 항체 형성에 시간이 걸리므로, 최소 출국 4~6주 전에는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상담받는 것이 좋다.
여행 백신은 개인의 건강 상태와 여행지, 기간, 활동 종류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개인의 예방접종 계획이 해당 지역의 질병 위험도라는 세계 보건 역학 정보와 직접적으로 연결됨을 보여준다.
- 필수 백신: 일부 아프리카 및 중남미 국가 입국 시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 권장 백신:
- A형 간염: 위생 수준이 낮은 대부분의 개발도상국 여행 시 권장된다.
- 장티푸스, 콜레라: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오염된 물이나 음식 섭취 위험이 있는 지역 여행 시 권장된다.
- 일본뇌염: 아시아 농촌 지역을 장기간 여행할 경우 권장된다.
- 광견병: 동물과 접촉할 가능성이 높은 장기 체류자에게 권장된다.
- 말라리아 예방약: 백신은 아니지만, 아프리카, 동남아 등 말라리아 유행 지역 여행 시에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 후 예방약을 처방받아 복용해야 한다.
백신의 안전성: 투여부터 첨가제까지 팩트체크
백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공중보건 수단 중 하나이지만, 그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오해도 끊이지 않는다. 백신의 안전성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엄격한 관리 시스템을 통해 보장된다.
올바른 투여가 효과를 좌우한다: 접종 방법과 부위
백신을 어떻게, 어디에 주사하는지는 안전성과 효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백신의 종류와 성분에 따라 최적의 면역반응을 유도하고 국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접종 방법이 정해져 있다.
- 근육주사(Intramuscular, IM): 성인은 어깨 삼각근, 영아는 허벅지 전외측 근육 깊숙이 주사한다. DTaP, B형간염, mRNA 백신 등 대부분의 불활성화 백신이 이 방법을 사용한다. 근육 조직은 혈액 공급이 풍부하고 면역세포가 많아 강력한 면역반응을 유도하기에 적합하다. 특히 면역증강제가 포함된 백신은 피하에 주사할 경우 심한 통증과 염증을 유발할 수 있어 반드시 근육주사로 접종해야 한다.
- 피하주사(Subcutaneous, SC): 피부 바로 아래 지방층에 주사한다. 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MMR), 수두 등 약독화 생백신에 주로 사용된다.
- 피내주사(Intradermal, ID): 피부의 진피층에 소량 주사하는 방식으로, 결핵(BCG) 백신이 대표적이다. 진피층에는 항원제시세포가 풍부하여 적은 양으로도 효과적인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 경구투여(Oral, PO): 입으로 복용하는 방식으로, 로타바이러스 백신에 사용된다.
접종 전후 주의사항과 금기 대상
백신 접종의 안전성은 접종 전후의 체계적인 관리 절차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이는 백신 안전이 단순히 백신 자체의 특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능동적이고 다층적인 시스템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 접종 전: 접종 당일 건강 상태가 양호해야 한다. 가벼운 감기 증상은 대부분 접종에 문제가 없지만, 열이 높다면 접종을 연기하는 것이 좋다. 과거 약물이나 음식에 대한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다면 반드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 접종 후: 접종 후 15~30분간 접종기관에 머물며 급성 알레르기 반응(아나필락시스) 발생 여부를 관찰해야 한다. 접종 부위 통증, 부기, 미열, 피로감 등은 면역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정상적인 신호이며, 대부분 2~3일 내에 사라진다. 접종 당일에는 과격한 운동이나 음주를 피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 접종 금기 대상: 백신 접종이 영구적으로 금지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가장 중요한 금기 사항은 이전 접종 시 해당 백신 또는 그 성분에 대해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경우다. 또한, 약독화 생백신은 임신부나 항암치료 등으로 인해 면역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환자에게는 접종이 금기된다.
- 아나필락시스 대처: 아나필락시스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백신 접종 후 수 분 내에 발생할 수 있다. 극히 드물지만 발생 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모든 예방접종 기관은 에피네프린 등 응급처치 약품과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의료진이 상주한다.
백신 첨가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 면역증강제와 보존제
백신에 포함된 첨가 성분은 백신 주저 현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 면역증강제(Adjuvants): 일부 백신(특히 단백질 재조합 백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소량 첨가되는 물질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알루미늄염(Alum)**으로, 100년 가까이 안전하게 사용되어 왔다. 알루미늄염은 접종 부위에서 항원을 천천히 방출하고, 우리 몸의 선천 면역계를 자극하여 더 강력한 항체 반응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백신에 포함된 알루미늄의 양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음식이나 물을 통해 섭취하는 양보다 훨씬 적어 인체에 무해하다.
- 보존제(Preservatives): 여러 번 사용하는 백신(다회 접종 바이알)이 세균이나 곰팡이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물질이다. 과거 일부 백신에 사용되었던 수은 함유 보존제 **티메로살(Thimerosal)**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는 날조된 연구에서 비롯된 명백한 거짓 정보다. 이후 전 세계 수많은 대규모 연구를 통해 티메로살과 자폐증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이 반복적으로 입증되었다. 예방적 차원에서 대부분의 소아용 백신에서 티메로살이 제거되었음에도 자폐증 진단율이 계속 증가한 사실은 이 둘의 인과관계가 없음을 다시 한번 방증한다.
이처럼 백신 첨가제에 대한 논란이 과학적 반박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현상은, 백신 주저가 단순히 정보의 부족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제약사, 의료계에 대한 불신과 같은 복잡한 사회 심리적 요인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정확한 정보 제공과 더불어 투명한 소통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백신의 미래: 맞춤형 치료에서 범용 백신까지
백신 기술은 감염병 예방을 넘어 암 치료, 만성질환 관리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mRNA 기술의 부상과 면역학의 발전은 백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암 정복의 새로운 희망: 개인 맞춤형 mRNA 암 백신
mRNA 기술의 가장 혁신적인 적용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암 치료다. 기존 백신이 건강한 사람을 감염병으로부터 ‘예방’하는 prophylactic 백신이라면, 암 백신은 이미 암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therapeutic 백신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개인 맞춤형 mRNA 암 백신은 환자 개인의 암 조직을 생검하여 유전자 분석을 통해 해당 암세포만이 가진 고유한 돌연변이 단백질, 즉 **신생항원(neoantigen)**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 신생항원 정보를 코딩하는 mRNA를 맞춤 제작하여 환자에게 주입한다. 그러면 환자의 몸속 세포들이 이 암세포의 ‘몽타주’를 생산하고, 면역계(특히 T세포)는 이를 학습하여 몸속에 숨어있는 암세포들을 정밀하게 공격하여 파괴하게 된다. 췌장암, 흑색종 등을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시험에서 일부 환자에게서 장기적인 면역반응을 유도하고 암의 재발을 막는 긍정적인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아직 대량 생산, 비용, 암세포의 다양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mRNA 암 백신은 암 정복을 향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에 맞서는 궁극의 무기: 범용 백신 개발 동향
인플루엔자나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변이가 잦은 바이러스는 지속적인 위협이 된다. 매년 새로운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하고, COVID-19 변이에 맞춰 부스터샷을 접종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과학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러한 ‘숨바꼭질’을 끝낼 **범용 백신(universal vaccine)**을 개발하는 것이다.
범용 백신은 바이러스의 변이가 심한 부분(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 단백질 머리 부분)이 아닌, 여러 변이주에 걸쳐 잘 변하지 않는 ‘보존된(conserved)’ 영역(예: 헤마글루티닌 줄기 부분)을 표적으로 한다. 이러한 백신이 개발된다면, 한 번의 접종으로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장기적인 방어력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매년 반복되는 백신 개발과 접종의 부담을 줄이고, 미래에 등장할 새로운 변종이나 신종 바이러스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미래 대비형’ 면역 전략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외 여러 기업과 연구기관이 범용 독감 백신과 범용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적 과제: 백신 주저 현상과 국제적 불평등 해소
최첨단 백신 기술이 개발되어도, 사회적, 지정학적 장벽에 부딪히면 그 빛을 잃을 수 있다. 오늘날 백신이 마주한 가장 큰 도전은 실험실이 아닌 사회에 있다.
- 백신 주저 현상(Vaccine Hesitancy): 백신이 있음에도 접종을 꺼리거나 거부하는 현상으로, WHO가 선정한 세계 10대 보건 위협 중 하나다.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잘못된 정보, 정부나 기관에 대한 불신 등 복합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 이로 인해 홍역처럼 백신으로 거의 퇴치되었던 질병이 다시 유행하는 등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 백신 불평등(Vaccine Inequity): COVID-19 팬데믹 기간 동안 부유한 국가들이 백신을 사재기하면서 저소득 국가들은 백신 부족에 시달렸다. 이러한 ‘백신 민족주의’는 인도주의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가 통제되지 않는 지역에서 새로운 변이가 출현하여 전 세계를 다시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위험한 전략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과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GAVI는 2000년 설립 이래 저소득 국가의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보급하여 7억 6천만 명 이상에게 접종하고 1,3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 COVID-19 팬데믹에서는 공평한 백신 분배를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주도하며 백신 불평등 해소에 앞장섰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GAVI의 주요 공여국으로서 글로벌 보건 안보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결국, 백신의 성공은 단순히 더 좋은 백신을 만드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만 달려있지 않다.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고, 국경을 넘어 협력하며,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까지 백신이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정치적 노력이 동반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mRNA 백신이 제 DNA를 바꿀 수 있나요? 아니다. 이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백신의 mRNA는 세포의 핵 바깥(세포질)에서만 작용하며, 유전 정보(DNA)가 저장된 핵 안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mRNA는 단백질을 만드는 일시적인 ‘명령서’와 같으며, 세포는 이 명령을 수행한 뒤 며칠 내로 mRNA를 자연스럽게 분해하여 제거한다. 따라서 사람의 DNA와 상호작용하거나 변형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Q2: 왜 추가접종(부스터샷)이 필요한가요? 시간이 지나면 최초 접종으로 형성된 항체의 수치가 자연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 추가접종(부스터샷)은 면역계에 ‘상기 훈련’을 시키는 것과 같다. 이를 통해 기억세포가 다시 활성화되어 항체 수치를 급격히 높이고 T세포 반응을 강화하여, 약해진 방어력을 보강하고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 능력을 높여준다.
Q3: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대부분의 이상반응은 접종 부위 통증, 피로감, 두통, 근육통, 미열 등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보통 며칠 내에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충분한 휴식과 수분 섭취가 도움이 되며, 필요시 해열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다. 만약 호흡 곤란, 얼굴이나 목의 부기, 심한 전신 발진 등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아나필락시스)이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119에 신고하거나 응급실을 방문해야 한다.
Q4: 백신에 태아 조직이 들어있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아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백신에도 태아 조직이 성분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오해는 일부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거나 생산하는 과정에서, 1960년대에 유래한 세포주(cell line)를 사용하는 경우에서 비롯되었다. 이 세포들은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토양’ 역할을 할 뿐, 최종 백신 제품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백신은 여러 단계의 정제 과정을 거쳐 매우 순수한 상태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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