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18년간 불허해온 구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의 관세 압박 속에 내려진 결정으로, 국내 지도 시장의 판도가 근본적으로 뒤바뀔 전망이다.
2007년 첫 요청부터 2026년 허가까지, 18년의 줄다리기
한국 정부는 2026년 2월 27일, 구글의 1:5,000 축척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구글이 2007년 처음 반출을 요청한 이래 18년 만의 결정이다. 구글은 2016년 2차 신청에서도 불허 판정을 받은 바 있으며, 2025년 2월 3차 신청을 제출한 뒤 약 1년간의 심사를 거쳐 이번 허가를 얻어냈다.
1:5,000 축척 지도는 건물 윤곽, 도로 폭, 지형 등고선까지 식별할 수 있는 고정밀 데이터로, 그간 안보상의 이유로 반출이 엄격히 제한되어 왔다. 이번 허가는 미 무역대표부의 관세 압박과 관광 활성화 필요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크리스 터너 구글 부사장은 “이번 결정을 환영하며 한국 관계자들과의 지속적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구글에 부과한 조건은 총 5가지다. 첫째, 군사시설 등 안보 관련 지역에 대한 영상보안처리를 의무화했다. 둘째, 특정 좌표의 정밀도를 제한하는 좌표제한 조치를 적용했다. 셋째, 지도 데이터를 처리하는 국내 서버를 반드시 활용하도록 했다. 넷째, 안보 위기 시 지도 서비스를 즉시 차단할 수 있는 이른바 ‘레드버튼’ 기능을 구글 측에 요구했다. 다섯째, 구글 내에 한국 지도 전담관을 상주시켜 정부와의 상시 소통 채널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러한 조건들은 과거 불허 사유였던 국가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이나, 실효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경희대 최진무 교수는 “시장 통제와 국가안보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있다”며 “구글에 대한 독점 의존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지도 시장 판도, 어떻게 바뀌나
| 항목 | 수치 |
|---|---|
| 네이버 지도 월간 사용자 | 2,650만 명 (점유율 70%) |
| T맵 월간 사용자 | 1,440만 명 |
| 카카오맵 월간 사용자 | 1,060만 명 |
| 구글맵 월간 사용자 | 880만 명 |
| 한국 연간 고정밀 지도 투자액 | 1,500억 원 |
| 향후 10년 예상 경제적 비용 | 최대 197조 원 |
현재 한국 지도 시장은 네이버 지도가 월간 사용자 2,650만 명으로 약 7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T맵이 1,440만 명, 카카오맵이 1,060만 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으며, 구글맵은 880만 명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확보하면 네비게이션, 자율주행, 증강현실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에서 국내 업체와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허가 소식이 전해진 당일 네이버 주가는 2.1% 하락한 반면, 카카오는 1.5% 상승했다. 카카오의 상승은 구글과의 기술 협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197조 원의 경고, 데이터 주권 논쟁
대한공간정보학회는 이번 허가로 인해 향후 10년간 최대 197조 원의 경제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정부가 매년 1,500억 원을 투자해 구축해온 고정밀 지도 데이터가 구글이라는 단일 외국 기업에 넘어가면서 발생하는 부가가치 유출, 국내 산업 위축, 기술 종속 등을 포괄하는 수치이다.
위광재 지도업체 관계자는 “한국이 매년 1,500억 원 투자하는 데이터를 외국 기업에 무료로 넘기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관광업계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성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대부분이 구글맵에 의존하지만, 고정밀 데이터 부재로 인해 내비게이션, 대중교통 안내 등에서 불편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미 무역대표부의 관세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 통상 관계에서 한국이 양보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지도 데이터 개방이 활용되었다는 해석이다.
이번 결정은 한국 IT 산업에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지도 플랫폼은 그간 구글의 고정밀 지도 서비스가 제한된 환경에서 성장해왔다. 구글이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입하면, 네이버 지도의 70% 점유율은 장기적으로 하락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자율주행, 로봇 배송, 도심항공교통(UAM) 등 차세대 모빌리티 서비스에서 고정밀 지도는 핵심 인프라이다.
구글이 이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면, 한국 기업들은 자체 플랫폼 대신 구글 생태계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 정부는 5중 안전장치를 통해 안보 우려를 해소했다고 밝히지만, 데이터 주권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더 큰 과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이 18년간 지켜온 지도 데이터 보호 정책을 전환한 만큼, 국내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와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후속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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