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발 전쟁 여파로 반도체 필수 가스인 헬륨 공급 불안이 커졌다. 하지만 국내 반도체 업계가 진짜 심각하게 보는 위험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육불화텅스텐(WF6)이다. 핵심 원료인 텅스텐을 사실상 중국에 100% 의존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수출을 통제하면 국내 반도체 공정은 곧바로 멈춰 설 수 있다.
헬륨보다 더 급한 건 텅스텐
“헬륨은 미국산이나 러시아산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텅스텐은 중국 말고는 대안이 없다.”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현장에서는 헬륨보다 WF6 수급을 훨씬 시급한 문제로 본다.
WF6는 반도체 원판(웨이퍼) 위에 텅스텐 막을 얇게 입히는(증착) 공정에 쓰는 핵심 원료다. 이 텅스텐 막은 반도체 칩 내부에서 전기 신호가 오가는 미세한 통로 역할을 한다.
D램, 낸드플래시, 로직 반도체 등 모든 제품에 들어간다. 특히 3차원(3D) 낸드플래시에서 소모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데이터 저장 공간(셀)을 아파트처럼 수백 단 위로 쌓아 올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200단 낸드라면 텅스텐을 200번 반복해서 입혀야 한다.
일본 WF6 감산, 중국 수출 통제가 촉발
전 세계 WF6 공급량의 약 25%를 차지하는 일본 업체들이 올해 하반기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예고했다. 원인은 중국에 있다. 중국 정부가 텅스텐을 국가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일본을 향한 수출 통제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일본 업체들은 원료 확보에 직격탄을 맞았다. 칸토덴카, 센트럴글라스 등 일본의 주요 WF6 공급사들은 삼성전자와 DB하이텍 등 국내 반도체 고객사에 이미 경고장을 날렸다. 기존 재고로는 5~6월까지만 버틸 수 있고 하반기부터는 수급을 장담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한국 고객사들에게 SK스페셜티나 후성 같은 한국 내 다른 공급처를 미리 찾으라고 요청했다.
중국은 2023년부터 텅스텐을 비롯한 전략 광물을 수출할 때 정부 허가를 받도록 제도를 바꿨다. 2024년에는 일본 정치인의 대만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아 대일 수출 통제를 더욱 옥죄었다. 텅스텐 분말(파우더)은 반도체를 만드는 필수 소재지만, 전차와 미사일, 항공기 등 무기 제작에도 쓰이는 이중용도 품목이기 때문이다.
텅스텐 가격 6~7배 폭등… 국내 업체는 ‘반사이익+압박’ 동시에
중국이 공급을 옥죄자 텅스텐 가격은 1년 만에 6~7배나 치솟았다. 텅스텐 원재료인 파라텅스텐산암모늄(APT)의 국제 기준 가격 역시 2023년 이후 500% 이상 폭등했다. 전 세계 텅스텐 분말 공급의 80%를 중국이 쥐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업계가 가격 폭등과 물량 부족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다행히 한국은 중국의 수출 통제 타깃에서 벗어나 있다.
국내 소재 기업인 SK스페셜티와 후성은 중국산 텅스텐 분말을 차질 없이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원재료 가격 폭등 여파는 피하지 못했다. 두 회사 모두 반도체 고객사들에 WF6 납품 단가를 두 배 이상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원가 구조가 동일한 만큼, 국내 업체들도 원재료 가격 폭등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일본이 원료를 못 구해 발생한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일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들은 초비상이다. 한국산 WF6를 급하게 도입하기 위해 공정 평가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끝내야 한다. 보통 새로운 소재를 반도체 라인에 투입하려면 1년 6개월 이상의 엄격한 품질 검증이 필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과정을 대폭 생략할 만큼 현장 상황이 긴박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원자재 가격 인상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산업 전체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정치적 갈등에 휘청이는 취약한 구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당장 단기적으로는 SK스페셜티, 후성 같은 국내 WF6 업체들이 빈자리를 차지하며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료 자체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이상, 가격 상승과 공급망 붕괴라는 위험 요소는 그대로 남는다.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텅스텐을 대신할 몰리브덴(Molybdenum) 등 신소재 상용화를 서두르거나, 핵심 전략 광물의 수입처를 다변화해야 한다. 이번 ‘텅스텐 대란’은 낡은 반도체 소재 공급망 생태계를 밑바닥부터 다시 설계하라는 강력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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