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은 물리적 한계와 지정학적 위험이라는 이중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재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지는 3nm(나노미터) 공정이다. TSMC는 기존 기술을 개선한 ‘핀플렉스(FinFlex)’ 기술을 내세웠고,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GAA’ 구조의 ‘MBCFET’를 양산하며 차별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7nm나 5nm 같은 기술 숫자는 실제 물리적 크기와는 다르다. 특히 채널 길이를 10nm 이하로 줄이는 일은 양자역학적 한계 때문에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앞으로 진화하는 반도체 기술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신창환 고려대학교 교수(최종현학술원 과학기술혁신위원회)가 ‘차세대 반도체 기술 및 시장과 반도체 산업 지형 변화’를 주제로 강연한 내용이 18일 최종현학술원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신 교수는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와 저전력 반도체 소자 등을 연구한 반도체 분야 전문가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문답 형식으로 편집한 내용이다.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Q1.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3nm 전쟁’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무엇을 두고 경쟁하는 것인가?
3nm 공정은 현재 반도체 제조 기술의 최전선이다. 하지만 단순히 회로의 선 폭을 줄이는 경쟁이 아니다. 핵심은 트랜지스터의 구조 자체를 어떻게 혁신하느냐에 있다.
TSMC는 기존 핀펫(FinFET) 구조를 개선한 ‘핀플렉스’ 기술로 3nm 공정을 구현했다. 핀의 개수를 1~3개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유연성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3nm 공정부터 아예 핀 구조를 포기했다. 대신 ‘MBCFET’라 불리는 ‘GAA’ 구조를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게이트가 채널의 모든 면을 감싸는 구조로, 전류를 조절하는 능력이 가장 우수하다.
Q2. 핀펫에서 GAA로 구조를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 호스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과거의 평면 구조가 호스를 발로 밟아 물을 막는 방식이었다면, 핀펫은 손으로 호스의 세 면을 감싸 쥐어 조절하는 방식이다. 최신 GAA 기술은 호스를 손으로 완전히 감싸 쥐어 물의 흐름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과 같다.
이를 통해 전기가 새는 것(누설 전류)을 막고, 적은 힘(저전력)으로도 반도체가 높은 성능을 내게 만든다. 전압은 낮추면서 더 많은 전류를 흐르게 하려면 이러한 구조 변화가 필수적이다.
Q3. 기술 숫자가 계속 줄어드는데, 실제로 그만큼 작아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7nm, 5nm, 3nm 같은 숫자는 기술력을 나타내는 지표일 뿐, 실제 소자의 물리적 길이와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내부의 절연막 두께는 실제로는 약 3nm 두께의 산화하프늄 물질을 사용한다. 또한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채널 길이를 10nm 이하로 줄이는 일은 전자가 벽을 뚫고 지나가는 양자역학적 현상 때문에 매우 어렵다.
따라서 단순히 길이를 줄이기보다는 소자의 구조를 바꾸거나 새로운 소재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Q4. 그렇다면 차세대 기술 개발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나?
가장 주목받는 연구 분야는 ‘스팁스위칭(Steep-Switching)’ 소자 기술이다. 이는 물리적 한계인 ‘볼츠만 한계’를 돌파하려는 시도다.
지난 20년 동안 칩 안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는 약 2년 주기로 10배씩 늘어났다. 하지만 구동 전압은 1.2V에서 0.75V로 낮추는 데 그쳤다. 반도체가 빽빽해질수록 소비 전력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기존 기술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Q5. 볼츠만 한계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하나?
볼츠만 한계는 트랜지스터의 전압 효율을 나타내는 값과 관련이 있다. 전류를 10배 증가시키는 데 필요한 전압의 크기를 의미하는데, 상온에서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솟값은 60mV다. 즉, 전류를 10배 키우려면 최소 60mV의 전압을 더 가해야 한다는 물리적 장벽이 존재한다.
스팁스위칭 연구는 신소재와 구조 변경을 통해 이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강유전 물질을 활용하거나 소재의 성질이 바뀌는 현상을 이용하는 등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Q6.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들이 있나?
첫째는 강유전 물질을 활용해 전압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기존에 쓰던 이산화규소 대신 산화하프늄 기반의 강유전 물질 등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물리적 한계치보다 더 낮은 전압으로도 전류를 조절할 수 있다.
둘째는 문턱 전압 스위칭 소자다. 특정 전압에서 전류가 갑자기 급격하게 증가하는 소재를 적용하여, 아주 가파르게 작동하는 스위치 특성을 만드는 방식이다.
Q7. 이 기술을 일상적인 모습에 비유한다면?
기존 트랜지스터가 전등 밝기를 서서히 조절하는 ‘회전식 조광기’라면, 스팁스위칭 소자는 살짝만 건드려도 불이 확 켜지는 ‘민감한 똑딱이 스위치’다.
회전식 조광기는 불을 밝게 하려고 손목을 많이 돌려야 하지만, 스팁스위칭 기술을 적용하면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스위치를 켜서 전구를 환하게 밝힐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인다.
Q8. 기술 경쟁의 판도는 어떻게 변하고 있나?
10nm 공정을 기점으로 반도체 제조의 주도권이 인텔에서 삼성전자와 TSMC로 넘어왔다. 현재 첨단 미세 공정 경쟁에서 인텔은 주요 순위에서 밀려난 상황이다.
특히 10nm 이하 첨단 반도체를 미국 안에서 전혀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미국 정부에 큰 안보 위기감을 주었다. 이는 중국으로 향하는 반도체 장비 수출을 규제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공급망 재편을 불러왔다.
Q9. 지정학적 위험이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중국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은 첨단 장비를 들여오는 데 제한을 받는다. 이 때문에 중국 내 생산 능력을 키우는 일이 어려워졌다.
이제 엔지니어와 기업은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 생산하고 어떻게 공급할지 결정하는 지정학적 위험까지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Q10. 결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과거의 반도체 경쟁이 ‘단순한 달리기 경주’였다면, 지금은 ‘복잡한 장애물 이어달리기’로 바뀌었다.
누가 더 빨리 달리느냐가 중요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새로운 주법(GAA 구조, 신소재)을 익혀야만 통과할 수 있는 물리적 장벽이 생겼다. 여기에 특정 구간에서는 달릴 수 없게 하거나 장비를 못 쓰게 하는 지정학적 페널티까지 고려해야 한다.
차세대 반도체 산업은 압도적인 기술력과 외교적인 공급망 관리 능력을 동시에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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