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박테리아)의 정의: 생명의 가장 오래된 형태
세균(細菌, Bacteria)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생명체 그룹입니다. 이들은 핵막이나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막으로 둘러싸인 세포 소기관이 없는 단세포 원핵생물(Prokaryote)로 정의됩니다.1 약 40억 년 전 지구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균은 오늘날 토양, 심해, 인간의 장 속, 심지어는 뜨거운 온천과 극지방의 빙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환경에서 발견됩니다.1
구조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세균은 놀라울 정도의 대사적 다양성과 뛰어난 환경 적응력을 지니고 있습니다.4 이러한 능력 덕분에 세균은 지구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이끄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다른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바이러스·고세균·진핵생물과의 차이 한눈에 보기
생명의 나무에서 세균의 위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주요 생물 및 비생물 그룹과의 차이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 바이러스(Virus)와의 차이: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세균이 독립적인 생명 활동이 가능한 ‘세포’라는 점입니다. 세균은 스스로 물질대사를 하고 에너지를 생산하며 이분법을 통해 증식합니다. 반면, 바이러스는 유전물질(DNA 또는 RNA)과 단백질 껍질로 이루어진 비세포성 입자로, 살아있는 숙주 세포에 기생해야만 복제가 가능합니다.5
- 고세균(Archaea)과의 차이: 과거 세균과 고세균은 핵막이 없다는 공통점 때문에 ‘원핵생물’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칼 우즈(Carl Woese)의 16S rRNA 염기서열 분석 연구를 통해, 고세균이 세균과는 다른 독립적인 생명의 역(Domain)을 구성하며, 오히려 진화적으로 진핵생물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5 이들의 세포벽 성분(세균: 펩티도글리칸, 고세균: 슈도펩티도글리칸), 세포막 지질의 화학 결합 방식, 유전자 복제 및 단백질 합성 과정 등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4 따라서 ‘원핵생물’이라는 용어는 구조적 특징을 나타내는 편의상의 분류일 뿐, 생명의 근본적인 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균, 고세균, 진핵생물의 3역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진핵생물(Eukarya)과의 차이: 가장 명확한 차이는 핵막과 복잡한 세포 소기관의 유무입니다. 동물, 식물, 곰팡이 등을 포함하는 진핵생물은 유전물질을 핵막 안에 보관하며,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소포체 등 기능적으로 분화된 막성 소기관을 가집니다.9 반면 세균은 유전물질이 세포질 내의 특정 영역인 핵양체(nucleoid)에 뭉쳐 있으며, 막성 소기관이 없습니다.1 또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리보솜의 크기도 세균은 70S로, 진핵생물의 80S보다 작습니다.10
| 구분 | 세균 (Bacteria) | 고세균 (Archaea) | 진핵생물 (Eukarya) | 바이러스 (Virus) |
| 세포 구조 | 원핵세포 | 원핵세포 | 진핵세포 | 비세포 |
| 핵막 | 없음 | 없음 | 있음 | 없음 |
| 세포벽 성분 | 펩티도글리칸 함유 | 펩티도글리칸 없음 | 식물: 셀룰로스, 진균: 키틴 | 없음 (단백질 껍질) |
| 리보솜 크기 | 70S | 70S | 80S (미토콘드리아 등은 70S) | 없음 |
| 유전물질 | DNA | DNA | DNA | DNA 또는 RNA |
| 자가 증식 | 가능 | 가능 | 가능 | 불가능 (숙주 필요) |
| 대표 예시 | 대장균, 유산균 | 메탄생성균, 호염균 | 인간, 식물, 곰팡이 | 인플루엔자, 코로나19 |
인체·환경·산업에서의 중요성 요약
세균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지만, 그 역할은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합적입니다. 인체 내, 특히 장에는 수백 조 마리의 세균이 공생하며 소화를 돕고, 비타민을 합성하며, 면역 체계를 조절하는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합니다.11 생태계에서는 죽은 동식물을 분해하여 영양소를 토양으로 되돌리고, 대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고정하는 등 물질 순환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1 또한 인류는 오래전부터 세균의 발효 작용을 이용해 김치, 된장, 치즈와 같은 식품을 만들어 왔으며, 현대에는 항생제를 비롯한 의약품 생산, 환경오염 정화, 바이오 연료 개발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세균의 놀라운 능력을 활용하고 있습니다.1 이처럼 세균은 인류와 지구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발견: 세균학의 역사
현미경의 발명과 최초의 관찰
인류가 세균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현미경의 발명 덕분이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직물 상인이었던 안톤 판 레벤후크(Antoni van Leeuwenhoek)는 취미로 렌즈를 갈아 당시의 어떤 현미경보다도 뛰어난 성능의 단일 렌즈 현미경을 제작했습니다.14 1676년, 그는 이 현미경을 이용해 빗물, 치아의 침전물, 후추를 우린 물 등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하다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작은 생명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미소동물(animalcules)’이라 명명했습니다.1 그의 발견은 단순히 새로운 생물을 관찰한 것을 넘어, 인간의 감각 너머에 거대한 미생물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류에게 처음으로 알린 과학사의 위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18
근대 미생물학의 황금기: 파스퇴르와 코흐
레벤후크의 발견 이후 약 200년간 미생물학은 더딘 발전을 보였으나, 19세기에 이르러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와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라는 두 거장의 등장으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화학자였던 파스퇴르는 발효와 부패가 공기 중의 미생물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유해한 미생물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저온 살균법(pasteurization)을 개발했습니다.11 또한,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을 통해 생명체는 오직 생명체로부터만 탄생한다는 ‘생물속생설’을 확립하며,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자연발생설’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20 그의 연구는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질병의 세균설(germ theory of disease)’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독일의 의사였던 코흐는 파스퇴르의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켜 특정 미생물이 특정 질병의 원인임을 증명하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확립했습니다.11 그는 탄저병, 결핵, 콜레라의 원인균을 순수하게 분리하고 배양하는 데 성공했으며, 질병의 원인체를 규명하기 위한 4가지 원칙, 즉 ‘코흐의 가설(Koch’s postulates)’을 제시했습니다.21 이로써 미생물학은 추측과 관찰의 단계를 넘어, 엄격한 실험과 증명에 기반한 근대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세균’과 ‘박테리아’ 용어의 차이와 학명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박테리아(Bacteria)’라는 용어는 ‘작은 막대기’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박테리온(baktērion)’에서 유래했습니다.1 이는 초기에 관찰된 세균들이 대부분 막대 모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세균(細菌)’은 ‘가느다란 균’이라는 의미의 한자어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용어입니다. 현재 두 용어는 학술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세균의 공식적인 이름은 국제 명명 규약에 따라 라틴어로 표기하는 학명(scientific name)을 사용합니다. 학명은 칼 폰 린네가 확립한 이명법에 따라 속명(genus name)과 종소명(specific epithet)을 병기하며, 이탤릭체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대장균의 학명은 Escherichia coli입니다.
생존의 대가: 세균의 기본 특성과 전략
생존 전략: 빠른 증식, 환경 내성, 수평적 유전자 전달
세균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 그룹 중 하나로, 그 성공의 비결은 놀라운 생존 전략에 있습니다.
- 빠른 증식: 세균은 주로 이분법(binary fission)이라는 무성생식을 통해 번식합니다.3 이는 하나의 세포가 유전물질을 복제한 뒤 둘로 나뉘어 두 개의 동일한 딸세포가 되는 매우 효율적인 증식 방식입니다.23 최적의 조건에서 대장균은 약 20분마다 분열할 수 있어, 단 하나의 세포가 10시간 이내에 수십억 개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빠른 증식 속도는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고 돌연변이를 통해 새로운 형질을 획득할 기회를 높여줍니다.
- 환경 내성: 일부 세균, 특히 바실러스(Bacillus) 속과 클로스트리디움(Clostridium) 속에 속하는 그람양성균들은 영양분이 고갈되거나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은 극한 환경에 처하면 **내생포자(endospore)**라는 매우 저항성이 강한 휴면 상태의 구조를 형성합니다.24 내생포자는 대사 활동을 거의 멈춘 채 수분, 열, 방사선, 강력한 화학물질에도 견딜 수 있으며, 환경이 다시 좋아질 때까지 수백 년 이상 생존할 수 있습니다.1
- 수평적 유전자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 HGT): 세균의 진화적 성공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수평적 유전자 전달입니다. 이는 부모에서 자손으로 유전자가 전달되는 수직적 전달과 달리, 같은 세대에 속한 다른 개체로부터 직접 유전물질(주로 플라스미드나 DNA 조각)을 전달받는 현상입니다.3 이를 통해 세균은 항생제 내성 유전자나 새로운 대사 능력과 같이 생존에 유리한 유전 정보를 마치 ‘업데이트 파일’을 다운로드하듯 신속하게 획득하여 빠르게 진화할 수 있습니다. 고등생물이 유성생식을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룰 유전적 변화를, 세균은 단 한 번의 유전자 전달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균의 진화 전략은 개체의 복잡성을 늘리는 대신, 집단 전체의 빠른 증식(속도)과 유전 정보의 수평적 공유(유연성)를 통해 환경 변화에 역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항생제 내성이 전 세계적으로 그토록 빠르게 확산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28
에너지 대사 개요: 생명의 화학 공장
세균은 지구상의 어떤 생물 그룹보다도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고 물질을 합성합니다. 이러한 대사적 유연성은 세균이 모든 서식지에서 번성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4
- 호흡(Respiration): 많은 세균은 유기물을 분해하여 얻은 전자를 최종 전자 수용체에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ATP(에너지 화폐)를 생산합니다. 최종 전자 수용체로 산소(O2)를 사용하는 경우를 **호기성 호흡(aerobic respiration)**이라 하고,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질산염(NO3−), 황산염(SO42−), 이산화탄소(CO2) 등 다른 물질을 사용하는 경우를 **혐기성 호흡(anaerobic respiration)**이라고 합니다.29
- 발효(Fermentation): 산소나 다른 외부 전자 수용체가 없는 환경에서 유기물을 불완전하게 분해하여 소량의 ATP를 얻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젖산, 알코올, 아세트산 등 다양한 발효 산물이 생성되며, 이는 인류가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 이용하는 원리입니다.
- 광합성(Photosynthesis): 일부 세균(시아노박테리아, 녹색황세균 등)은 식물처럼 빛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유기물로 합성하는 광합성을 수행합니다.4 특히 시아노박테리아는 산소를 발생시키는 광합성을 통해 원시 지구의 대기를 산소가 풍부한 환경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화학합성(Chemosynthesis): 빛이 없는 깊은 바다의 열수구나 동굴과 같은 환경에 사는 일부 세균은 황화수소(H2S), 암모니아(NH3), 철 이온(Fe2+)과 같은 무기화합물을 산화시킬 때 방출되는 화학 에너지를 이용해 유기물을 합성합니다.4 이들은 빛 없이도 독립적으로 생태계의 생산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구조 총론: 형태와 외형적 분류
기본 형태: 구균, 간균, 나선균
세균은 세포벽에 의해 유지되는 고유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세균을 분류하고 동정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됩니다. 크게 세 가지 기본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31
- 구균(Coccus, 복수형 Cocci): 공처럼 둥근 모양의 세균입니다. 예로는 식중독의 원인이 되는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과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구균(Streptococcus pneumoniae)이 있습니다.3
- 간균(Bacillus, 복수형 Bacilli): 막대기 모양의 세균으로, 가장 흔한 형태 중 하나입니다. 우리 장 속에 사는 대장균(Escherichia coli)과 탄저병을 일으키는 탄저균(Bacillus anthracis)이 대표적입니다.3
- 나선균(Spirillum/Spirochete):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모양의 세균입니다. 위궤양의 원인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와 매독을 일으키는 매독균(Treponema pallidum)이 여기에 속합니다.3 이 외에도 쉼표(,)처럼 살짝 굽은 형태의 비브리오(Vibrio) 속도 있습니다.3
세포 배열: 군집의 미학
구균과 일부 간균은 세포 분열 후에도 딸세포들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특징적인 배열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배열 패턴은 세균을 동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33
- 쌍구균(Diplococci): 두 개의 세포가 쌍을 이룬 형태 (예: 임질균)
- 연쇄상구균(Streptococci): 여러 세포가 사슬처럼 길게 연결된 형태 (예: 폐렴구균, 용혈성 연쇄상구균)
- 포도상구균(Staphylococci): 세포들이 불규칙하게 분열하여 포도송이처럼 뭉쳐 있는 형태 (예: 황색포도상구균)
- 사련구균(Tetrads): 4개의 세포가 사각형으로 배열된 형태
- 팔련구균(Sarcinae): 8개의 세포가 정육면체 모양으로 배열된 형태
생물막(바이오필름)의 형성과 의의
자연 환경에서 대부분의 세균은 액체 속에 홀로 떠다니는 플랑크톤 상태가 아니라, 표면에 부착하여 고도로 조직화된 군집인 **생물막(biofilm)**을 형성하며 살아갑니다.36 생물막은 단순한 세균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균 스스로가 분비한 다당류, 단백질, DNA 등으로 구성된 세포외 고분자물질(Extracellular Polymeric Substances, EPS)이라는 끈적끈적한 기질 속에 세균들이 묻혀 있는 ‘세균 도시’와 같습니다.
이러한 생물막의 형성은 여러 단계에 걸쳐 체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36:
- 초기 부착(Initial Attachment): 부유하던 세균이 표면에 약하게 가역적으로 부착합니다.
- 비가역적 부착(Irreversible Attachment): 세균이 선모와 같은 부착 구조물을 이용하고 EPS를 분비하기 시작하면서 표면에 단단히 고정됩니다.
- 성숙(Maturation): 세균이 증식하고 더 많은 EPS를 분비하면서 생물막은 버섯 모양과 같은 복잡한 3차원 구조로 성장합니다. 내부에는 물과 영양분이 흐르는 수로(channel)가 형성되기도 합니다.38
- 분산(Dispersion): 생물막이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거나 환경 조건이 변하면, 일부 세균들이 생물막을 탈출하여 새로운 서식지로 퍼져나가 새로운 생물막을 형성합니다.
생물막은 세균에게 매우 중요한 생존 전략입니다. EPS 기질은 물리적 방어막 역할을 하여 항생제, 소독제, 그리고 숙주의 면역세포 공격으로부터 내부의 세균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합니다.36 이 때문에 생물막 내부의 세균은 플랑크톤 상태의 세균보다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이 수백 배에서 수천 배까지 높아질 수 있습니다.40 의료기기에 형성된 생물막은 만성적인 병원 감염의 주된 원인이 되며, 치아 표면에 형성되는 치태(dental plaque) 역시 대표적인 생물막의 예입니다. 또한, 생물막 내부에서는 ‘쿼럼 센싱(quorum sensing)’이라는 화학적 신호 전달을 통해 세균들이 서로 소통하며 집단 행동을 조절하고, 유전자 교환을 통해 항생제 내성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거점이 되기도 합니다.39
내부·주변 구조 세부: 생명의 최소 단위, 그 내부를 들여다보다
세포질, 핵양체, 리보솜: 생명 활동의 중심
세균 세포의 내부는 생명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핵심 요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 세포질(Cytoplasm): 세포막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으로, 물, 효소, 영양분, 노폐물, 유전물질 등이 혼합된 젤과 같은 물질입니다. 모든 대사 과정이 일어나는 생화학 반응의 중심지입니다.25
- 핵양체(Nucleoid): 세균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핵심 영역입니다. 진핵생물처럼 핵막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원형 DNA 염색체가 단백질과 함께 꼬이고 응축되어 세포질의 특정 부위에 존재합니다.1
- 리보솜(Ribosome): 세포질 전체에 흩어져 있는 작은 입자로, mRNA의 유전 정보를 읽어 단백질을 합성하는 ‘공장’ 역할을 합니다. 세균의 리보솜은 70S(S는 침강계수) 크기로, 50S와 30S의 두 소단위체로 구성됩니다. 이는 진핵생물의 80S 리보솜과 크기 및 구성이 달라, 많은 항생제(예: 테트라사이클린, 마크로라이드)가 세균의 리보솜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표적이 됩니다.10
- 플라스미드(Plasmid): 많은 세균은 주 염색체 DNA 외에, 독립적으로 복제하고 존재할 수 있는 작은 원형 DNA 분자인 플라스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4 플라스미드는 생존에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항생제 내성, 독소 생산, 새로운 물질 대사 능력 등 세균에게 특별한 이점을 제공하는 유전자들을 운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42
세포질막과 세포벽: 경계와 방어
- 세포질막(Cytoplasmic Membrane): 세포질을 직접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으로, 인지질 이중층에 단백질이 박혀 있는 구조입니다. 이 막은 세포 안팎으로의 물질 출입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장벽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호기성 세균의 경우 에너지를 생산하는 전자전달계가 위치하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24 진핵세포막과 달리 콜레스테롤이 없는 대신, 호파노이드(hopanoid)라는 분자가 막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43
- 세포벽(Cell Wall): 세포질막 바깥쪽에 위치하며, 세균에게 형태를 부여하고 높은 내부 삼투압을 견디게 하여 세포가 터지는 것을 막아주는 단단한 구조물입니다.24 거의 모든 세균의 세포벽은 **펩티도글리칸(peptidoglycan)**이라는 독특한 중합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4 펩티도글리칸은 N-아세틸글루코사민(NAG)과 N-아세틸뮤람산(NAM)이라는 두 종류의 당이 교대로 연결된 사슬들이 펩타이드 다리에 의해 그물처럼 엮인 거대한 분자입니다. 이 구조는 인체 세포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페니실린과 같은 베타락탐계 항생제의 완벽한 표적이 됩니다. 이들 항생제는 펩티도글리칸 합성을 방해하여 세균의 세포벽을 약화시키고 결국 세균을 죽게 만듭니다.41
그람양성균 vs. 그람음성균: 세포벽 구조의 결정적 차이
세균은 1884년 덴마크의 의사 한스 크리스티안 그람이 개발한 그람 염색법에 대한 반응에 따라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이 차이는 세포벽 구조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며, 세균의 동정, 병원성, 항생제 감수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 그람양성균(Gram-positive bacteria): 세포질막 바깥에 수십 층의 두껍고 조밀한 펩티도글리칸 층을 가지고 있습니다.41 그람 염색 과정에서 첫 번째 염색약인 크리스탈 바이올렛과 아이오딘 복합체가 이 두꺼운 그물 구조에 단단히 결합하여, 탈색제인 알코올로 처리해도 빠져나가지 않아 보라색을 유지합니다. 세포벽에는 타이코산(teichoic acid)이라는 물질이 존재하여 세포벽 구조를 강화하고 이온 조절에 관여합니다.
- 그람음성균(Gram-negative bacteria):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집니다. 세포질막 바깥에는 얇은 펩티도글리칸 층이 존재하며, 그 바깥을 다시 **외막(outer membrane)**이라는 인지질 이중층이 둘러싸고 있습니다.24 이 외막의 바깥쪽 층은 **지질다당류(Lipopolysaccharide, LPS)**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LPS는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내독소(endotoxin)**로 작용하여 패혈증 쇼크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24 외막에는 포린(porin)이라는 단백질이 있어 작은 분자들이 통과하는 채널 역할을 합니다. 그람 염색 시, 알코올이 이 외막을 녹여버리고 얇은 펩티도글리칸 층에서는 크리스탈 바이올렛-아이오딘 복합체가 쉽게 씻겨 나갑니다. 이후 두 번째 염색약인 사프라닌에 의해 붉은색 또는 분홍색으로 염색됩니다.
- 산성내성균(Acid-fast bacteria):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과 같은 일부 세균은 세포벽에 미콜산(mycolic acid)이라는 왁스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일반적인 그람 염색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염색법(Ziehl-Neelsen 염색)으로 염색하면 강한 산성 알코올로도 탈색되지 않는 특징을 보여 ‘항산성균’ 또는 ‘산성내성균’이라고 불립니다.24
| 구분 | 그람양성균 (Gram-positive) | 그람음성균 (Gram-negative) |
| 그람 염색 결과 | 보라색 | 붉은색/분홍색 |
| 펩티도글리칸 층 | 두꺼움 (수십 층) | 얇음 (한두 층) |
| 외막 (Outer Membrane) | 없음 | 있음 |
| LPS (내독소) | 없음 | 있음 |
| 타이코산 (Teichoic acid) | 있음 | 없음 |
| 항생제 감수성 (예) | 페니실린 등 세포벽 합성 억제제에 상대적으로 취약 | 외막이 장벽으로 작용하여 많은 항생제에 저항성 |
| 대표 균주 |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탄저균 | 대장균, 살모넬라균, 녹농균, 콜레라균 |
외부 부속 구조물: 생존과 병독성의 무기들
세포벽 바깥에는 세균의 생존, 부착, 운동, 병원성에 관여하는 다양한 부속 구조물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캡슐(Capsule) 및 점액층(Slime layer): 많은 병원성 세균은 세포벽 바깥을 다당류나 단백질로 이루어진 끈적한 층으로 덮고 있습니다. 이 층이 정돈된 구조를 가지면 캡슐, 느슨하고 불규칙하면 점액층이라고 합니다.5 이 구조는 숙주 면역세포의 식균작용(phagocytosis)을 방해하여 세균을 보호하고 24, 표면에 달라붙어 생물막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45
- 편모(Flagella): 세균의 운동 기관으로, 세포막에 고정된 모터가 회전하면서 긴 채찍 모양의 필라멘트를 돌려 추진력을 얻습니다.12 플라젤린(flagellin)이라는 단백질 단위체로 구성되며, 그 수와 위치는 세균 종류에 따라 다양합니다.25
- 선모(Pili) 및 섬모(Fimbriae): 편모보다 훨씬 짧고 가늘며 수가 많은 털 모양의 단백질 구조물입니다. 필린(pilin)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됩니다.25
- 섬모(Fimbriae): 주로 숙주 세포나 다른 표면에 부착하는 데 사용되어 감염의 첫 단계를 가능하게 합니다.42
- 선모(Pili): 섬모보다 길고 수가 적으며, 특별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특히 **성선모(sex pilus)**는 세균 간 접합(conjugation) 시에 다리 역할을 하여 한 세균에서 다른 세균으로 플라스미드 DNA를 전달하는 통로가 됩니다.5
- 내생포자(Endospore): 앞서 언급했듯이, 일부 그람양성균이 생존이 불리한 조건에서 형성하는 극도로 저항성이 강한 휴면 세포입니다. 세포 내에서 만들어지며, 원래 세포가 사멸한 후에도 독립적으로 생존합니다. 내생포자는 끓는 물, 건조, 방사선, 소독제에도 견딜 수 있어 완벽한 멸균의 주요 대상이 됩니다.1
생명의 나무 위에서: 세균의 분류와 계통
분류학상 위치: 3역(Domain) 분류 체계
현대 생물학에서는 모든 생명체를 분류하는 최상위 단계를 ‘역(Domain)’으로 설정하고, 이를 세균역(Bacteria), 고세균역(Archaea), **진핵생물역(Eukarya)**의 세 가지로 나눕니다.4 이 분류 체계는 세포의 형태적 특징뿐만 아니라, 리보솜 RNA(rRNA) 유전자의 염기서열과 같은 분자생물학적 정보를 기반으로 생명체 간의 근본적인 진화적 관계를 반영합니다. 따라서 세균은 고세균과 함께 원핵세포라는 구조적 공통점을 가지지만, 생명의 역사에서 매우 초기에 갈라져 나온 독립적인 거대 그룹입니다.7
종, 균주, 혈청형: 분류 용어 정리
세균을 분류할 때 사용되는 몇 가지 중요한 용어들이 있습니다.
- 종(Species): 세균 분류의 기본 단위로, 일반적으로 DNA 염기서열 유사도가 70% 이상이고, 16S rRNA 유전자 서열 유사도가 97% 이상이며, 표현형적 특성을 공유하는 세균들의 집단을 의미합니다.
- 균주(Strain): 같은 종에 속하더라도 약간의 유전적 또는 생화학적 차이를 보이는 하위 집단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대장균(E. coli)이라는 종 안에는 인체에 무해한 장내 공생 균주도 있고, O157:H7과 같이 심각한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성 균주도 있습니다.
- 혈청형(Serotype 또는 Serovar):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항원(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물질)의 차이에 따라 세균을 분류하는 방법입니다. 주로 그람음성균의 LPS에 있는 O항원과 편모에 있는 H항원의 종류에 따라 구분하며, 역학 조사나 병원균 진단에 매우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앞서 언급한 E. coli O157:H7이 바로 혈청형에 따른 명명법의 예입니다.
16S rRNA 기반 분자계통학
현대 세균 분류학의 혁명은 16S rRNA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16S rRNA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리보솜의 작은 소단위체(30S)를 구성하는 RNA 분자입니다. 이 유전자가 세균 계통 분류의 ‘표준 잣대’로 사용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47:
- 보편성: 모든 세균과 고세균에 존재합니다.
- 기능적 안정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하므로 진화 과정에서 큰 변화 없이 잘 보존되었습니다.
- 적절한 정보량: 약 1,550개의 염기 길이로 충분한 유전 정보를 담고 있으며, 모든 세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존 부위(conserved region)**와 종마다 차이를 보이는 **가변 부위(variable region)**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미지의 세균에서 16S rRNA 유전자를 증폭(PCR)하여 염기서열을 분석한 뒤, 이를 GenBank와 같은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수많은 세균의 서열과 비교합니다. 이를 통해 해당 세균이 어떤 그룹에 속하는지, 기존에 알려진 종과 얼마나 가까운지 등 진화적 관계, 즉 계통(phylogeny)을 매우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49 이 방법은 특히 실험실에서 배양이 어려운 세균을 동정하고, 환경 샘플에 어떤 미생물들이 존재하는지(마이크로바이옴 분석)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51
다만, 16S rRNA 분석법도 한계는 있습니다. 진화적으로 매우 가까운 종들이나 같은 종 내의 다른 균주들을 구분하기에는 변별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어, 이런 경우에는 다른 유전자나 전체 유전체 서열을 분석하는 추가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51
그람염색에 의한 실용 분류와 한계
분자계통학적 방법이 확립되기 전부터 임상 미생물학 분야에서는 그람 염색이 세균을 분류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54 이 방법은 빠르고 간단하게 세균을 그람양성균과 그람음성균으로 나눌 수 있어, 감염병 진단 초기에 어떤 항생제를 사용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41
그러나 그람 염색은 오직 세포벽의 구조적 차이만을 반영할 뿐, 세균 간의 진화적 관계를 전혀 보여주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그람양성균 그룹 안에도 방선균과 후벽균처럼 계통학적으로 매우 멀리 떨어진 세균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세포벽이 없거나(마이코플라스마) 특이한 구조를 가진(결핵균) 세균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56
주요 계통 그룹 개요
분자계통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수많은 세균의 문(Phylum)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 그룹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프로테오박테리아(Proteobacteria): 그람음성균으로 구성된 가장 크고 대사적으로 다양한 그룹입니다. 대장균, 살모넬라균, 비브리오균, 헬리코박터균 등 인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많은 세균이 여기에 속합니다.57
- 후벽균(Firmicutes): 주로 그람양성균으로 구성되며, G+C 비율이 낮은 특징을 가집니다. 탄저균(Bacillus), 파상풍균(Clostridium),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유산균(Lactobacillus) 등이 포함됩니다.57
- 방선균(Actinobacteria): 토양에 널리 서식하는 그람양성균으로, G+C 비율이 높습니다. 많은 종류의 항생제를 생산하는 스트렙토마이세스(Streptomyces) 속과 결핵균(Mycobacterium)이 이 그룹에 속합니다.57
-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 산소 발생형 광합성을 하는 세균으로, 과거 남조류로 불렸습니다. 지구 대기에 산소를 축적시키고, 식물 엽록체의 기원이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번식과 유전: 끊임없는 증식과 진화
이분법과 증식 곡선
세균은 주로 **이분법(binary fission)**이라는 무성생식 방법으로 번식합니다.22 이 과정은 세포가 길어지면서 유전물질인 DNA를 복제하고, 세포 중앙에 격벽이 형성되면서 결국 두 개의 유전적으로 동일한 딸세포로 나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23
세균을 영양분이 풍부한 액체 배지에 접종하여 배양하면, 시간에 따른 생균수의 변화는 특징적인 **증식 곡선(growth curve)**을 나타냅니다. 이 곡선은 네 단계로 구분됩니다 60:
- 유도기(Lag phase): 세균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기입니다. 세포 분열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필요한 효소와 대사 물질을 활발하게 합성합니다.
- 대수기(Logarithmic/Exponential phase): 세균이 가장 활발하게 분열하며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세균은 생리적으로 가장 건강하고 균일한 상태입니다. 세균의 수가 두 배로 증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세대 시간(generation time)**은 이 시기를 기준으로 측정합니다.58
- 정지기(Stationary phase): 영양분이 고갈되고 대사 과정에서 생성된 독성 노폐물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는 속도와 기존 세포가 사멸하는 속도가 거의 같아져 전체 생균 수에 변화가 없는 시기입니다.
- 사멸기(Death phase): 환경이 더욱 악화되면서 사멸하는 세포의 수가 생성되는 세포의 수보다 많아져 생균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시기입니다.
수평적 유전자 전달: 진화의 가속 페달
세균은 이분법이라는 무성생식을 통해 자신과 똑같은 개체를 복제하지만, 놀랍게도 매우 높은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며 빠르게 진화합니다. 그 비결은 바로 **수평적 유전자 전달(Horizontal Gene Transfer, HGT)**에 있습니다. HGT는 부모에서 자손으로 유전자가 전달되는 ‘수직적 전달’과 달리, 같은 세대의 다른 세균 개체로부터 유전 정보를 직접 전달받는 현상입니다.26 이는 세균이 항생제 내성이나 새로운 대사 능력과 같은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매우 신속하게 획득하고 전파하는 핵심 기전입니다.28 HGT에는 주로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 형질전환(Transformation): 세균이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다른 세균이 죽어서 남긴 DNA 조각을 자신의 세포 안으로 직접 흡수하여 유전 정보에 통합하는 과정입니다.62 1928년 프레더릭 그리피스의 폐렴구균 실험을 통해 처음 발견되었으며, DNA가 유전물질임을 증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27
- 접합(Conjugation): 두 세균이 성선모(sex pilus)라는 구조를 통해 물리적으로 연결된 후, 한쪽 세균(공여균)이 가진 플라스미드 DNA를 다른 쪽 세균(수용균)에게 직접 전달하는 과정입니다.62 이는 마치 세균들의 ‘짝짓기’와 유사하며, 특히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여러 종류의 세균에게 빠르게 퍼져나가는 주요 경로입니다.27
- 형질도입(Transduction): 세균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가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과정입니다.62 파지가 한 세균을 감염시키고 증식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숙주 세균의 DNA 조각을 자신의 유전물질과 함께 포장한 뒤, 이 파지가 다른 세균을 감염시킬 때 이전 숙주의 DNA를 새로운 숙주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플라스미드와 박테리오파지의 역할
플라스미드와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의 유전적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적 요소입니다. 플라스미드는 접합을 통해 종의 경계를 넘어 다른 세균에게 항생제 내성이나 독소 생산 능력과 같은 강력한 생존 무기를 전달하는 ‘이동성 유전자 패키지’ 역할을 합니다.27 박테리오파지는 형질도입을 통해 우연히 유전자를 재조합시키며 세균의 진화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칩니다. 이 두 요소는 세균 세계의 유전 정보를 역동적으로 순환시키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을 촉진하는 중요한 동력입니다.
분포와 생태: 어디에나 있고, 모든 곳에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생명체
세균은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는 생명체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생활 공간인 토양, 물, 공기는 물론, 생명체가 살기 어려울 것이라 여겨지는 극한 환경에서도 발견됩니다. 수심 수천 미터 아래 빛이 닿지 않는 심해 열수구 주변에서는 황화합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화학합성 세균이 생태계를 이루고, 100°C가 넘는 뜨거운 온천에서는 초호열성 세균이, 남극의 얼음 속에서는 저온에 적응한 세균이, 사해와 같이 염도가 매우 높은 환경에서는 호염성 세균이 번성합니다.3 이처럼 놀라운 적응력 덕분에 세균은 지구 생물권(biosphere)의 거의 모든 곳을 서식지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의 몸 안과 밖에도 엄청난 수의 세균이 군집을 이루어 공생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군집과 상호작용: 경쟁, 공생, 기생
자연 환경에서 세균은 홀로 존재하기보다 다양한 종의 미생물들과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며 군집을 이룹니다. 이들의 상호작용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 경쟁(Competition): 한정된 영양분이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미생물과 경쟁합니다. 일부 세균은 다른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항생물질)을 분비하여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도 합니다.
- 공생(Symbiosis): 서로 다른 종이 함께 살아가며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며, 상리공생, 편리공생, 기생으로 나뉩니다. 상리공생은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로, 인간의 장내 세균이나 콩과식물의 뿌리혹박테리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 기생(Parasitism): 한쪽(기생체)은 이익을 얻고 다른 쪽(숙주)은 해를 입는 관계입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병원성 세균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생물지구화학적 순환의 핵심 엔진
세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탄소, 질소, 황, 인과 같은 생명에 필수적인 원소들이 생물과 무생물 환경 사이를 순환하는 과정, 즉 **생물지구화학적 순환(biogeochemical cycle)**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65
- 탄소 순환: 시아노박테리아와 같은 광합성 세균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유기물로 고정하여 생태계에 탄소를 공급하는 생산자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수많은 다른 세균들은 죽은 동식물의 사체나 배설물 속 유기물을 분해하여 이산화탄소 형태로 대기로 되돌려 보내는 분해자 역할을 합니다.67 만약 세균과 같은 분해자가 없다면, 지구는 죽은 유기물로 뒤덮이고 영양소 순환이 멈춰 생태계는 붕괴될 것입니다.69
- 질소 순환: 질소는 단백질과 핵산의 필수 구성 성분이지만, 대기의 약 78%를 차지하는 질소 기체(N2)는 매우 안정하여 대부분의 생물이 직접 이용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일부 세균과 고세균만이 **질소 고정(nitrogen fixation)**이라는 과정을 통해 질소 기체를 암모니아(NH3)와 같이 생물이 이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1 이후 다른 세균들이 암모니아를 질산화(nitrification)하거나, 다시 질소 기체로 되돌리는 탈질(denitrification) 과정에 참여하며 질소 순환 전체를 주도합니다.67 세균의 이러한 활동이 없다면, 지구상의 생명 활동은 불가능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지혜: 세균과 다른 생명체의 공생
동물과의 공생: 장내 미생물군(마이크로바이오타)
인간의 몸은 단지 인간 세포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약 38조 마리에 달하는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입니다. 이 미생물 군집, 특히 대장에 집중적으로 서식하는 **장내 미생물군(gut microbiota)**은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70
장내 세균은 인간이 스스로 분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탄수화물(식이섬유 등)을 발효시켜 단쇄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s, SCFAs)과 같은 유익한 물질을 생산합니다. 이 물질들은 장 상피세포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전신적인 염증을 억제하고 대사 건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70 또한, 장내 세균은 비타민 K와 일부 비타민 B군을 합성하고,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성 세균이 장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어벽 역할을 수행합니다.72
최근 연구들은 장내 미생물군이 단순히 소화 기능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계의 발달과 기능 조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73 태어난 직후 장에 정착하는 미생물들은 면역 체계가 ‘우리 것’과 ‘외부의 적’을 구분하도록 훈련시키는 중요한 교관 역할을 합니다. 더 나아가, 장내 미생물은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거나 조절함으로써 뇌 기능과 기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장-뇌 축(gut-brain axis)’의 핵심적인 부분임이 알려지면서, 우울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계 질환과의 연관성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71
식물과의 공생: 뿌리혹박테리아와 질소고정
식물 세계에서도 세균과의 공생은 생존에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콩과 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Rhizobium)**의 상리공생 관계입니다.12
토양에 사는 뿌리혹박테리아는 콩과 식물의 뿌리로 침투하여 ‘뿌리혹’이라는 특별한 기관을 형성합니다. 이 뿌리혹 안에서 세균은 식물로부터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탄수화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습니다. 그 대가로, 세균은 대기 중의 풍부하지만 비활성 상태인 질소 기체(N2)를 ‘질소고정효소(nitrogenase)’를 이용해 암모니아(NH3)로 전환합니다. 이 암모니아는 식물이 단백질과 핵산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질소 영양분으로 즉시 흡수되어 사용됩니다.75 이 공생 관계 덕분에 콩과 식물은 질소가 부족한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랄 수 있으며, 수확 후 식물체가 토양에 분해되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역할도 합니다. 이는 화학 비료의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농업의 중요한 원리이기도 합니다.79
질소 순환의 핵심 과정과 미생물
지구의 질소 순환은 전적으로 다양한 미생물들의 정교한 협력과 대사 활동에 의해 유지됩니다.
- 질소 고정 (Nitrogen Fixation): 대기 중의 N2를 생물이 이용 가능한 NH3 또는 암모늄 이온(NH4+)으로 전환하는 과정입니다. 콩과 식물과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나 토양에 자유롭게 사는 아조토박터(Azotobacter), 클로스트리디움(Clostridium) 등이 이 역할을 수행합니다.1
- 질산화 (Nitrification): 암모늄 이온을 식물이 더 잘 흡수하는 형태인 질산염(NO3−)으로 산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두 단계로 나뉘며, 아질산균(Nitrosomonas)이 $NH_4^+$를 아질산염(NO2−)으로, 질산균(Nitrobacter)이 $NO_2^−$를 $NO_3^−$로 전환합니다.
- 탈질 (Denitrification): 토양 속의 질산염을 다시 질소 기체(N2)로 환원시켜 대기로 되돌려 보내는 과정입니다. 슈도모나스(Pseudomonas)와 같은 탈질세균들이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질산염을 최종 전자 수용체로 사용하여 일어납니다. 이 과정은 질소 순환의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간 건강과 질병: 인류의 오랜 적이자 동반자
대표적인 세균성 감염 질환
인류의 역사는 세균성 감염병과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세균이 인체에 침입하여 다양한 질병을 일으킵니다.
- 호흡기 감염: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에 의한 결핵은 전 세계적으로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이며, 폐렴구균(Streptococcus pneumoniae)이나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Haemophilus influenzae) 등에 의한 폐렴은 노인과 면역저하자에게 특히 위험합니다.80
- 소화기 감염: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식품매개 감염병이 많습니다. 콜레라균(Vibrio cholerae)에 의한 콜레라는 심한 설사를 유발하며, 살모넬라 타이피균(Salmonella Typhi)은 장티푸스를, 시겔라균(Shigella)은 세균성 이질을 일으킵니다. 병원성 대장균 O157:H7에 의한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은 용혈성 요독 증후군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81
- 기타 주요 감염병: 파상풍균(Clostridium tetani)의 독소에 의해 발생하는 파상풍, 디프테리아균(Corynebacterium diphtheriae)에 의한 디프테리아, 매독균(Treponema pallidum)에 의한 성매개 감염병인 매독 등이 있습니다.13 대장균은 장 외에 요로로 침입하여
요로감염의 가장 흔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병원성 기전: 세균의 공격 전략
병원성 세균은 숙주의 방어 체계를 무력화시키고 질병을 일으키기 위해 정교하고 다양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 부착(Adhesion) 및 침투(Invasion): 감염의 첫 단계는 세균이 숙주의 조직 표면에 달라붙는 것입니다. 세균은 섬모(fimbriae)와 같은 표면 구조물을 이용해 특정 세포에 단단히 부착합니다.83 이후 콜라게나아제, 히알루로니다아제와 같은 효소를 분비하여 세포 사이의 결합 조직을 녹이고 조직 깊숙이 침투합니다.
- 독소(Toxin) 생산: 많은 세균은 독소를 생산하여 숙주 세포에 직접적인 손상을 입힙니다.
- 외독소(Exotoxin): 세균이 살아있는 동안 세포 밖으로 분비하는 강력한 단백질 독소입니다. 디프테리아 독소, 파상풍 독소, 보툴리눔 독소 등이 있으며, 매우 적은 양으로도 치명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84
- 내독소(Endotoxin): 그람음성균의 외막을 구성하는 LPS 성분으로, 세균이 죽고 세포벽이 파괴될 때 방출됩니다. 내독소는 숙주의 면역계를 과도하게 자극하여 고열, 염증, 혈압 저하를 유발하며, 심한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패혈성 쇼크(septic shock)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24
- 면역 회피(Immune Evasion): 병원성 세균은 숙주의 면역 공격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캡슐(협막)은 백혈구의 식균작용을 방해하는 보호막 역할을 하며 5, 일부 세균은 일부러 면역세포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증식하며 공격을 피하기도 합니다 (예: 결핵균).
- 생물막(Biofilm) 형성: 만성 감염의 경우, 세균은 생물막을 형성하여 항생제와 면역세포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요새를 구축합니다.
진단의 기초: 적을 알아내는 방법
세균 감염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원인균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임상 현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진단법들이 사용됩니다.
- 현미경 검사 및 염색: 환자의 혈액, 소변, 객담, 고름 등의 검체를 채취하여 슬라이드에 도말하고 염색한 후 현미경으로 관찰합니다. 특히 그람 염색은 세균을 그람양성균과 그람음성균으로 신속하게 구분하고, 형태(구균, 간균)와 배열을 파악하여 초기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합니다.54
- 배양 및 동정: 검체에 포함된 세균을 실험실의 인공 배지에서 증식시키는 것을 **배양(culture)**이라고 합니다. 자라난 세균 군집(colony)의 모양, 색깔 등을 관찰하고, 다양한 생화학적 검사를 통해 원인균의 종(species)을 정확히 **동정(identification)**합니다.55 배양된 균으로는 항생제 감수성 검사를 시행하여 가장 효과적인 항생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55
- 분자 진단: 세균이 가진 고유의 DNA나 RNA를 직접 검출하는 방법입니다. **중합효소 연쇄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PCR)**은 미량의 세균 유전물질을 수백만 배로 증폭하여 검출하므로 매우 민감하고 신속한 진단이 가능합니다.55 배양이 어려운 세균(예: 결핵균)의 진단에 특히 유용합니다.
예방: 위생, 백신, 식품 안전
세균 감염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기본적인 방법은 올바른 손 씻기를 포함한 철저한 개인위생 관리입니다.81 또한, 특정 세균 감염병은
백신(vaccine) 접종을 통해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습니다. DTa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백신, 폐렴구균 백신,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Hib) 백신 등이 대표적인 세균성 질환 예방 백신입니다.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음식물을 충분히 가열하여 섭취하고, 조리된 음식과 날음식을 분리하여 보관하며, 안전한 물과 식재료를 사용하는 등 식품 안전 수칙을 준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81
항생제와 내성(슈퍼박테리아): 조용한 팬데믹
항생제 작용 기전: 세균을 공격하는 원리
20세기 의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항생제(antibiotics)는 세균 감염병 치료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항생제는 ‘선택적 독성’이라는 원리에 따라, 인체 세포에는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세균의 생존에 필수적인 특정 구조나 대사 과정을 표적으로 공격합니다.89
| 작용 기전 | 주요 항생제 계열 | 작용 방식 |
| 세포벽 합성 억제 | 베타락탐계 (페니실린, 세팔로스포린), 글리코펩티드계 (반코마이신) | 살균 (Bactericidal) |
| 단백질 합성 억제 | 아미노글리코사이드계, 테트라사이클린계, 마크로라이드계, 린코사마이드계 | 주로 정균 (Bacteriostatic) |
| 핵산 합성 억제 | 퀴놀론계 (DNA 합성 억제), 리파마이신계 (RNA 합성 억제) | 살균 |
| 엽산 합성 억제 | 설폰아미드계, 트리메토프림 | 정균 |
| 세포막 기능 억제 | 폴리믹신계 | 살균 |
- 세포벽 합성 억제: 세균에게는 있지만 인체 세포에는 없는 펩티도글리칸 세포벽의 합성을 방해합니다. 세포벽이 약해진 세균은 삼투압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됩니다. 베타락탐계와 반코마이신이 대표적입니다.89
- 단백질 합성 억제: 세균의 70S 리보솜에 결합하여 단백질 합성을 중단시킵니다. 인체 세포의 80S 리보솜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아미노글리코사이드, 테트라사이클린, 마크로라이드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91
- 핵산 합성 억제: DNA 복제나 RNA 전사 과정에 필수적인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여 세균의 증식과 생존을 막습니다. 퀴놀론계와 리팜피신이 대표적입니다.89
- 엽산 합성 억제: 세균은 생존에 필수적인 엽산을 스스로 합성해야 하지만, 인간은 음식을 통해 섭취합니다. 설폰아미드계 항생제는 이 엽산 합성 경로를 차단하여 세균의 성장을 억제합니다.91
내성 메커니즘: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방법
항생제의 지속적인 사용은 세균에게 강력한 생존 압력으로 작용했고, 그 결과 세균은 항생제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다양한 내성(resistance) 기전을 진화시켰습니다.
- 효소에 의한 항생제 분해/변형: 세균이 항생제를 직접 분해하거나 구조를 변형시키는 효소를 생산합니다. 페니실린을 분해하는 베타락타메이즈(β-lactamase)가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24
- 항생제 표적의 변이: 항생제가 결합해야 할 표적 부위(예: 세포벽 합성 효소 PBP, 리보솜)의 구조를 유전적 돌연변이를 통해 변화시켜 항생제가 더 이상 결합하지 못하게 만듭니다.93
- 항생제 유출 펌프(Efflux Pump) 가동: 세포막에 존재하는 펌프 단백질을 이용해 세포 안으로 들어온 항생제를 인식하고 다시 밖으로 퍼내어 세포 내 농도를 낮게 유지합니다.91
- 세포막 투과성 변화: 그람음성균의 경우, 항생제가 통과하는 통로인 외막의 포린(porin) 단백질의 수를 줄이거나 구조를 변경하여 항생제가 세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습니다.93
내성 확산의 원인: 인류가 만든 위기
항생제 내성은 자연적인 진화 현상이지만, 인간의 부적절한 항생제 사용이 그 확산을 폭발적으로 가속화했습니다. 주요 원인으로는 감기에 대한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 처방된 항생제를 임의로 중단하는 행위 등 의료 분야에서의 오남용이 가장 큽니다.95 또한, 가축의 성장 촉진이나 질병 예방을 위해 농·축·수산 분야에서 대량으로 사용되는 항생제 역시 내성균 발생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이렇게 발생한 내성균은 사람, 동물, 식품, 환경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됩니다.
대응 전략: ‘조용한 팬데믹’과의 싸움
여러 종류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여 치료가 매우 어려운 세균을 슈퍼박테리아라고 부릅니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VRE),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목(CRE) 등이 대표적입니다.13 항생제 내성은 치료 실패, 입원 기간 연장, 의료비 증가를 초래하며, 21세기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조용한 팬데믹’으로 불립니다.97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핵심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항생제 스튜어드십(Antimicrobial Stewardship): 의료기관에서 항생제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올바른 종류, 용량, 기간 동안 사용되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 감염관리 강화: 병원 내 손 위생, 격리 지침 준수 등을 통해 내성균의 확산을 차단합니다.
- 연구개발(R&D) 투자: 기존 항생제와는 다른 새로운 기전을 가진 신약 개발과,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치료(파지 요법) 등 대체 치료법 연구를 지원합니다.
- 원헬스(One Health) 접근: 사람, 동물, 환경의 건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하에, 여러 분야가 협력하여 항생제 내성 문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합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인체 항생제 사용량이 최상위권에 속해 있어, 항생제 내성 문제에 특히 취약합니다.98 정부는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수립하여 범국가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습니다.97
세균의 산업·환경·의학적 이용: 세상을 바꾸는 작은 거인
발효식품부터 의약품까지
인류는 오래전부터 세균의 대사 능력을 현명하게 이용해 왔습니다. 유산균의 젖산 발효는 배추를 김치로, 우유를 요구르트와 치즈로 만들어 저장성을 높이고 독특한 풍미와 영양을 더해줍니다.100 고초균(
Bacillus subtilis)과 곰팡이의 복합적인 작용은 콩을 된장과 간장으로 변화시킵니다.102
현대 생명공학 기술은 세균을 고부가가치 물질을 생산하는 ‘미세 세포 공장’으로 활용합니다. 토양에 사는 방선균의 일종인 스트렙토마이세스(Streptomyces) 속 세균은 스트렙토마이신, 테트라사이클린 등 수많은 종류의 항생제를 생산하는 원천입니다. 또한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특정 세균이 인슐린, 성장호르몬과 같은 의약 단백질이나 산업용 효소, 아미노산 등을 대량으로 생산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지구를 살리는 미생물: 생물정화와 폐수처리
세균의 놀라운 분해 능력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특정 세균들은 원유 유출 사고 시 기름을 분해하거나,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독성 화학물질(살충제, 중금속 등)을 무해한 물질로 전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생물의 능력을 이용해 오염된 환경을 복원하는 기술을 **생물정화(bioremediation)**라고 합니다.104 이는 화학적, 물리적 처리 방법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104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하수처리장 역시 거대한 미생물 배양 시설과 같습니다. 활성슬러지 공법에서는 다양한 세균과 원생동물로 구성된 미생물 덩어리가 하수 속의 유기물을 먹어 분해하고, 질소와 인과 같은 부영양화 원인 물질을 제거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37
미래 기술의 보고: 합성생물학과 유전공학
세균은 이제 단순히 이용의 대상을 넘어, 인류가 생명을 재설계하고 새로운 기능을 창조하는 미래 기술의 핵심 플랫폼이 되고 있습니다.
-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이는 공학적 원리를 생명 시스템에 적용하여,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기능의 생물학적 부품, 장치,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학문입니다.110 과학자들은 컴퓨터 회로처럼 작동하는 유전자 회로를 설계하여 세균에 삽입함으로써, 특정 조건에서만 약물을 생산하는 ‘스마트 치료제’나,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생분해성 물질을 생산하는 ‘친환경 공장’과 같은 맞춤형 미생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111
- CRISPR-Cas9의 기원과 응용: 21세기 생명과학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꼽히는 3세대 유전자 가위, CRISPR-Cas9 시스템은 놀랍게도 세균의 면역 체계에서 유래했습니다.114 세균은 과거에 자신을 침입했던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의 DNA 조각을 자신의 유전체 내 CRISPR 서열에 저장해 두었다가, 동일한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Cas9이라는 단백질(유전자 가위)을 이용해 바이러스의 DNA를 정확하게 잘라내어 무력화합니다.116 과학자들은 이 원리를 응용하여, 가이드 RNA를 이용해 우리가 원하는 어떤 생명체의 DNA 염기서열이든 정교하게 자르고 편집할 수 있는 강력한 유전공학 도구를 개발했습니다.117 이 기술은 유전병 치료, 농작물 개량, 신약 개발 등 거의 모든 생명과학 분야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균은 단순한 연구 대상을 넘어, 미래 바이오 기술의 핵심적인 ‘플랫폼’이자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도구 상자’로서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핵심 개념 바로 알기: 자주 묻는 질문(FAQ)
바이러스 vs. 세균: 무엇이 다른가?
바이러스와 세균은 둘 다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미생물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균은 세포벽, 세포막, 세포질, 유전물질을 모두 갖춘 완벽한 단세포 생명체로, 스스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증식할 수 있습니다. 치료에는 항생제가 사용됩니다. 반면, 바이러스는 유전물질(DNA 또는 RNA)과 그것을 감싸는 단백질 껍질로만 이루어진 비세포성 입자입니다. 생명체와 무생물의 중간 형태로, 반드시 살아있는 숙주 세포에 들어가야만 복제가 가능합니다. 치료에는 항바이러스제가 사용되며, 항생제는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프로바이오틱스와 장내 세균의 관계
장내 세균은 우리 장 속에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모든 세균 군집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반면,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는 ‘적절한 양을 섭취했을 때 숙주에게 건강상 이점을 주는 살아있는 미생물’로 정의됩니다.119 주로 유산균(
Lactobacillus)과 비피더스균(Bifidobacterium)이 해당됩니다. 즉, 프로바이오틱스는 건강에 유익한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특정 세균 균주를 의미하며, 이를 섭취하는 것은 장내 세균 군집의 균형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좋은 균’을 보충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하고, 장벽 기능을 강화하며, 면역 체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121
유익균과 유해균의 경계, 그리고 조건부 병원성
장내 세균은 그 역할에 따라 크게 유익균, 유해균, 그리고 **중간균(기회감염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124 유익균은 소화를 돕고 면역력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유해균은 독소를 만들고 염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간균은 평소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장내 환경이 유해균에 유리하게 변하면 유해균처럼 행동합니다. 이상적인 장내 세균의 비율은 유익균 25%, 유해균 15%, 중간균 60%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125
**조건부 병원성 세균(opportunistic pathogen)**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수술, 항암치료, 항생제 장기 복용 등으로 인해 숙주의 면역력이 약해지거나 정상 세균총의 균형이 깨졌을 때 감염을 일으켜 질병을 유발하는 세균을 말합니다. 녹농균이나 칸디다균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람양성·음성의 의미와 임상적 함의
그람 염색 결과는 단순한 색깔 차이가 아니라, 세균의 세포벽 구조와 직결되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그람양성균은 두꺼운 펩티도글리칸 층을 가지고 있어 세포벽을 표적으로 하는 페니실린 계열 항생제에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그람음성균은 얇은 펩티도글리칸 층 바깥에 외막이라는 추가적인 방어벽을 가지고 있어 많은 항생제가 침투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외막의 LPS 성분은 강력한 내독소로 작용하여 패혈성 쇼크와 같은 심각한 전신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에게서 원인균이 그람양성인지 음성인지를 아는 것은 초기 항생제 선택과 예후 예측에 매우 중요한 임상적 단서가 됩니다.
미래를 향하여: 세균 연구의 최신 동향과 전망
마이크로바이옴과 메타게놈 분석
과거의 미생물학 연구는 실험실에서 배양 가능한 일부 세균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Generation Sequencing, NGS)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특정 환경(인체, 토양, 해양 등)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물의 유전 정보 총체, 즉 **메타게놈(metagenome)**을 한 번에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126 이를 통해 우리는 배양되지 않는 99%의 미생물을 포함한 전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의 구성과 기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비만, 당뇨, 암, 자가면역질환, 심지어 정신질환까지 다양한 질병이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관련이 있음을 밝혀내며,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127
항생제 내성 감시와 신약 탐색
슈퍼박테리아의 위협에 맞서,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균의 출현과 확산 경로를 추적하는 감시 시스템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과학자들은 내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존 항생제와는 완전히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는 새로운 항생물질을 자연(특히 미개척 환경의 미생물)에서 탐색하는 연구, 세균의 내성 기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약물 개발, 그리고 세균의 천적인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파지 요법(phage therapy)이나 항균 펩타이드(antimicrobial peptide)와 같은 항생제 대체 치료법 개발이 포함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참고 자료 안내
세균의 세계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신뢰할 수 있는 몇 가지 자료를 추천합니다.
- 전문 교과서: 미생물학 분야의 표준 교과서인 『Brock Biology of Microorganisms』는 세균학의 모든 측면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 과학 저널: 세계적인 과학 저널인 『Nature』, 『Science』, 『Cell』과 미생물학 전문 저널인 『Nature Microbiology』 등에서 최신 연구 동향을 접할 수 있습니다.
- 공공 데이터베이스: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에서 운영하는 GenBank는 전 세계의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를 제공하며, 누구나 접근하여 세균의 유전 정보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핵심 요약 및 제언
세균 세계의 핵심 정리
세균은 단순한 원핵세포 구조를 가졌지만, 약 40억 년의 역사를 지닌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다양하며 성공적인 생명체입니다. 이들은 지구의 탄소와 질소 순환을 책임지는 생태계의 핵심 엔진이며, 인간의 장 속에서 공생하며 소화와 면역을 돕는 필수적인 동반자입니다. 그러나 일부 세균은 정교한 병원성 기전으로 인류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며, 특히 항생제의 오남용으로 인한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은 21세기 공중 보건의 가장 큰 위협으로 떠올랐습니다. 반면, 인류는 세균의 놀라운 대사 능력을 발효, 환경 정화, 의약품 생산에 활용해 왔으며, 이제는 합성생물학과 유전공학 기술을 통해 세균을 미래 바이오 산업을 이끌어갈 핵심 플랫폼으로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맺음말: 공존의 지혜를 향하여
세균은 인류의 적이자 친구이며, 파괴자인 동시에 창조자입니다. 세균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감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나 그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활용하는 지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자제하고, 처방받은 항생제는 끝까지 복용하며, 손 씻기와 같은 기본적인 위생 수칙을 준수하는 작은 실천이 항생제 내성의 확산을 막고 우리 모두의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 세계와의 현명한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가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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