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생명의 다양성, 왜 지금 이야기해야 하는가?
생물다양성(Biological diversity)은 단순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종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이는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 그 자체를 의미하며, 인류의 생존과 번영이 달려있는 핵심적인 자산이다.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 제2조는 생물다양성을 “육상, 해상 및 그 밖의 수중 생태계와 이들의 복합체를 포함하는 모든 원천에서 발생한 생물체의 다양성을 말하며, 이는 종 내의 다양성, 종 간의 다양성 및 생태계의 다양성을 포함한다”고 정의한다.1 이 정의는 생물다양성이 세 가지 상호 연결된 수준—유전적, 종, 그리고 생태계—으로 구성된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스템임을 명확히 한다.
지금 우리가 생물다양성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속도로 이 생명의 그물망이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발표된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과학-정책 플랫폼(IPBES)’의 글로벌 평가 보고서는 충격적인 현실을 드러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 활동으로 인해 약 100만 종의 동식물이 수십 년 내에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지구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다.3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인류의 식량 안보, 식수, 건강, 그리고 경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다.2
이 글은 생물다양성의 본질과 그 중요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핵심 질문들
- 생물다양성이란 정확히 무엇이며, 왜 단순한 ‘종의 수’ 이상을 의미하는가?
- 생물다양성의 세 가지 수준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 자연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는 과연 얼마일까?
- IPBES 보고서가 경고하는 ‘100만 종 멸종 위기’의 주범은 무엇인가?
- 한반도의 구상나무와 새만금 철새는 지금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
- ’30×30 목표’란 무엇이며, 인류는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생물다양성의 세 가지 얼굴
생물다양성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는 유전적, 종, 생태계라는 세 가지 구체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층위로 구성된다. 이 세 가지 수준의 다양성은 각각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며,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구 생태계의 건강성과 회복탄력성을 유지한다.
유전적 다양성: 보이지 않는 생명의 보험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은 같은 종 내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다양성을 의미한다.7 같은 종의 개체들이라도 저마다 다른 유전적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미세한 차이가 종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유전적 다양성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할 수 있는 원재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9
유전적 다양성의 중요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는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이다.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단일 품종의 감자(‘럼퍼’)에 식량 대부분을 의존했다. 이때 감자 역병이 퍼지자, 병에 대한 저항력을 가진 유전자가 없는 감자 농작물 전체가 전멸했고, 이는 100만 명 이상의 아사자를 낳는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졌다.11 이 사건은 유전적 획일성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교훈이다.
이 교훈은 오늘날 현대 농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화된 농업 시스템은 소수의 고수확 품종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유전적 획일성을 심화시킨다.11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농작물 다양성의 75%가 사라졌으며, 이러한 유전 자원의 손실은 기후 변화, 새로운 질병 및 해충에 대응할 수 있는 농업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심각하게 저해하여 세계 식량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13 야생 친척종과 토착 품종이 보유한 다양한 유전자들은 가뭄, 염분, 질병에 저항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미래의 식량 위기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다.10
종 다양성: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플레이어들
종 다양성(Species diversity)은 특정 지역이나 생태계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 종의 풍부함을 의미한다.7 이는 단순히 종의 수(종 풍부도, species richness)뿐만 아니라, 각 종의 개체수가 얼마나 균등하게 분포하는지(종 균등도, species evenness)를 함께 고려하는 개념이다.8 모든 종은 생태계 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어떤 종들은 그 존재만으로 생태계 전체의 구조와 기능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러한 종을 **핵심종(Keystone Species)**이라고 부른다. 핵심종은 아치형 구조물의 정점에 놓여 전체 구조를 지탱하는 쐐기돌(keystone)에 비유된다. 개체 수는 적을지라도 이들이 사라지면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17
- 사례 1: 해달과 다시마 숲
태평양 연안의 해달(sea otter)은 대표적인 핵심종이다. 해달은 성게를 주식으로 삼는데, 과거 모피를 얻기 위한 무분별한 남획으로 해달이 사라지자 성게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성게는 다시마(kelp)를 먹고 사는데, 천적이 없어진 성게들이 다시마 숲을 황폐화시켰다. 거대한 수중 숲이었던 다시마 군락이 사라지자, 이를 서식지로 삼던 수많은 어류와 무척추동물들이 함께 사라지면서 해양 생태계 전체가 붕괴되는 ‘영양 연쇄(trophic cascade)’ 효과가 발생했다.17 - 사례 2: 옐로스톤의 늑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늑대가 사라졌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었다.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가 없어지자 엘크(elk)의 개체수가 급증했고, 이들은 강가의 식생을 무분별하게 뜯어먹었다. 그 결과 강둑이 침식되고 수질이 악화되었으며, 강가 식생에 의존하던 비버와 새, 물고기들이 자취를 감췄다. 1995년 늑대가 재도입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늑대가 엘크의 수를 조절하자 강가의 식생이 되살아났고, 이는 강둑을 안정시키고 생태계를 복원시켜 비버와 다양한 생물들이 다시 돌아오는 결과를 낳았다.17
이 사례들은 생태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나의 종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그 종의 부재로 끝나지 않고, 예측하기 어려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생태계 전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생태계 다양성: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거대한 시스템
생태계 다양성(Ecosystem diversity)은 숲, 초원, 사막, 습지, 강, 산호초 등 한 지역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태계의 종류를 의미한다.8 각 생태계는 고유한 물리적 환경과 그곳에 적응한 생물 군집으로 구성되며, 인류에게 필수적인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이러한 혜택을 **생태계 서비스(Ecosystem services)**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기후를 조절하고 깨끗한 공기와 물을 제공한다. 습지는 자연 정수기처럼 오염물질을 걸러내고 홍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해안가의 맹그로브 숲과 산호초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여 폭풍과 해일로부터 연안 지역을 보호한다.21
이처럼 다양한 생태계는 각기 다른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며, 이들의 건강한 유지는 지구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하나의 생태계가 파괴되면 그 생태계가 제공하던 고유한 서비스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인접한 다른 생태계에도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쳐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 전체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생태계 다양성을 보전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 자체를 지키는 일이다.
생물다양성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
생물다양성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나 희귀 동식물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안녕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막대한 가치를 지닌다. 자연이 제공하는 깨끗한 공기, 물, 식량, 의약품 원료, 기후 조절 등의 혜택, 즉 ‘생태계 서비스’는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룬다.6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이러한 서비스의 가치를 당연하게 여기고 경제적 계산에서 누락해왔다.
최근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2021년 ‘자연의 경제적 사례(The Economic Case for Nature)’ 보고서를 통해, 생태계 서비스 붕괴가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야생 수분(pollination), 해양 어업, 천연림 목재 공급 등 일부 핵심적인 생태계 서비스가 부분적으로 붕괴할 경우, 2030년까지 전 세계 GDP가 매년 2조 7천억 달러(약 3,700조 원)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23
이러한 경제적 충격은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보고서는 특히 자연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저소득 국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지역은 생태계 붕괴 시 GDP가 각각 연간 9.7%, 6.5%까지 급감할 수 있다.24 이는 생물다양성 손실이 환경 문제를 넘어 심각한 개발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야기하는 글로벌 정의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생태계 서비스의 구체적인 경제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 수분 서비스: 꿀벌, 나비, 새와 같은 수분 매개체는 전 세계 농작물 생산의 약 3분의 1에 기여한다.21 이들이 제공하는 수분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2,350억 달러에서 5,77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27
- 수산 자원: 해양 생태계는 수많은 인구에게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개의 일자리가 어업 및 관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21
- 의약품 및 생물 자원: 아스피린, 항암제 등 수많은 현대 의약품이 식물과 미생물에서 유래했으며, 자연은 미래의 신약을 발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21
- 기후 및 재해 조절: 숲과 해양은 지구의 탄소 순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또한, 건강한 생태계는 홍수, 가뭄, 폭풍과 같은 자연재해의 충격을 완화하여 인명과 재산을 보호한다.5
이처럼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투자다. 자연 자본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경제 정책과 의사결정에 통합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평소와 같은 사업(business-as-usual)’ 방식은 더 이상 선택지가 될 수 없으며, 이는 경제적으로도 비합리적인 경로임이 명백해지고 있다.25
적색경보: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5대 요인
IPBES 글로벌 평가 보고서는 현대 인류가 직면한 생물다양성 위기의 원인을 명확하게 진단했다. 보고서는 생물다양성 감소를 초래하는 5가지 주요 직접 요인(direct drivers)을 지목했으며, 이들은 인구 증가, 소비 패턴, 기술 발전, 거버넌스 등 근본적인 간접 요인에 의해 추동된다.27 이 5대 요인은 독립적으로 작용하기보다 서로 복잡하게 얽혀 파괴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며 생명의 그물망을 위협하고 있다.
표 1: 생물다양성 감소의 5대 직접적 요인 (IPBES 글로벌 평가 보고서 요약)
| 순위 | 요인 (Driver) | 핵심 내용 (Description) | 구체적 사례 (Examples) |
| 1 | 토지 및 해양 이용의 변화 | 서식지 파괴, 단편화, 황폐화. 농업 확장, 도시화, 벌목, 댐 건설 등. | 아마존 열대우림의 농지 전환, 갯벌 매립. |
| 2 | 생물체의 직접적인 착취 | 어업, 수렵, 벌목 등 자원의 과도한 수확.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이용. | 남획으로 인한 어족자원 고갈, 불법 야생동물 거래. |
| 3 | 기후 변화 | 온도 상승, 강수 패턴 변화, 해수면 상승, 해양 산성화, 극단적 기후 현상 증가. | 산호 백화 현상, 고산 식물의 서식지 축소. |
| 4 | 오염 | 화학물질, 영양염류, 플라스틱 폐기물 등이 생태계에 유입되어 생물에게 직접적 피해를 줌. | 농경지 비료 유출로 인한 녹조 현상, 해양 플라스틱. |
| 5 | 외래 침입종 | 비토착종이 새로운 환경에 유입되어 토착종을 위협하고 생태계 균형을 파괴함. | 황소개구리, 큰입배스, 등검은말벌. |
- 토지 및 해양 이용의 변화 (Changes in Land and Sea Use): 이는 현재까지 생물다양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육지 표면의 75%, 해양 환경의 66%가 인간 활동으로 인해 심각하게 변형되었다.5 특히 농경지 확장은 가장 큰 원인으로, 전 세계 육지 면적의 3분의 1 이상이 작물 재배나 목축에 사용되고 있다.27 숲이 농장으로, 갯벌이 산업단지로 바뀌면서 수많은 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단편화되었다.
- 생물체의 직접적인 착취 (Direct Exploitation of Organisms):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어업, 벌목, 수렵, 채취 활동은 특정 종의 개체수를 급격히 감소시켜 멸종으로 내몬다. 전 세계 어족 자원의 3분의 1 이상이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남획되고 있으며, 불법 야생동물 거래는 수많은 종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다.4
- 기후 변화 (Climate Change): 기후 변화는 생물다양성 위협 요인 중 가장 빠르게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 미래에는 다른 요인들을 압도할 것으로 예측된다.29 기온 상승은 생물들의 서식 범위를 변화시키고, 개화나 번식 시기 같은 생체 리듬(phenology)을 교란한다. 해양 산성화는 산호초와 조개류의 생존을 위협하며, 극단적인 기후 현상(가뭄, 홍수, 폭염)은 생태계의 회복력을 넘어선 충격을 가한다.31
- 오염 (Pollution): 플라스틱, 살충제, 중금속, 농업용 비료에서 유출된 영양염류 등 다양한 오염물질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매년 3억에서 4억 톤에 달하는 산업 폐기물이 수계로 유입되며 4, 해양 플라스틱 오염은 해양 생물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먹이 사슬을 통해 결국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 외래 침입종 (Invasive Alien Species): 인간의 이동과 교역을 통해 본래 서식지를 벗어나 새로운 지역으로 유입된 외래종은 천적이나 경쟁자가 없는 환경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여 토착 생태계를 파괴한다.20 이들은 토착종을 직접 포식하거나, 서식지와 자원을 두고 경쟁하며, 질병을 옮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린다.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위기 사례
글로벌 생물다양성 위기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IPBES가 지목한 5대 위협 요인은 한반도 생태계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우리의 소중한 자연 자산이 개발 논리와 기후 변화, 외래종의 침입 앞에서 신음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서식지 파괴: 새만금 갯벌의 침묵
새만금 간척 사업은 토지 이용 변화가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 새만금 갯벌은 도요새와 물떼새를 포함한 수많은 이동성 물새들에게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EAAF) 상 가장 중요한 중간 기착지 중 하나였다.32 그러나 33.9km에 달하는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광활했던 갯벌은 사라졌고, 이는 철새들에게 재앙이 되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방조제 완공 이후 새만금 지역의 조류 개체수가 86%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33 먹이터와 휴식처를 잃은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은 생존의 위협에 직면했으며, 이는 국제적인 생물다양성 보전 노력에 큰 오점을 남겼다.34 이는 단기적인 경제 개발 논리가 장기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생태적 가치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교훈이다.
외래 침입종: 토종 생태계를 점령한 황소개구리와 큰입배스
1970년대 식용 및 자원 조성 목적으로 국내에 도입된 황소개구리와 큰입배스는 관리 소홀로 자연 생태계에 유출된 이후, 토종 생태계를 교란하는 대표적인 외래 침입종이 되었다.35 이들은 국내에 천적이 거의 없고 번식력이 왕성하여 전국의 저수지와 하천으로 빠르게 확산했다.37 엄청난 포식성을 지닌 황소개구리는 토종 개구리, 뱀, 물고기, 심지어 작은 새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생태계 먹이 사슬을 파괴했다.38 강력한 육식 어종인 큰입배스 역시 붕어, 피라미 등 토종 어류와 치어, 새우류를 닥치는 대로 포식하여 국내 하천의 어종 다양성을 급격히 감소시켰다.40 이들의 침입은 ‘생물학적 사막화’를 초래하며 토종 생물들이 사라진 죽음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후 변화: 고사하는 한국 특산종, 구상나무
기후 변화의 위협은 한반도 고산지대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오직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특산종이자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한 구상나무(Abies koreana)가 집단 고사하며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41 구상나무는 서늘한 기후에 서식하는 아고산대 침엽수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에 매우 취약하다. 기온이 오르면서 소나무, 신갈나무와 같은 온대 수종들이 점차 고지대로 서식지를 확장하며 구상나무와의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43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 등 주요 서식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현재의 온난화 추세가 계속된다면 2100년경에는 야생에서 완전히 멸종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44 구상나무의 위기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의 고유한 생물 주권을 앗아가는 실존적 위협임을 보여준다.
오염: 해양 생물을 질식시키는 플라스틱
우리나라 연안 역시 플라스틱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버려진 폐어구와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 생물들에게 치명적인 덫이자 독이 되고 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에서 사체로 발견된 바다거북 10마리 중 8마리의 소화기관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되었다.45 바다거북들은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해 삼키고, 이는 소화기관을 막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46 ‘웃는 돌고래’로 알려진 토종 돌고래 상괭이 역시 폐어구에 걸려 익사하거나 플라스틱을 섭취하는 등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다.48 이러한 해양 플라스틱 문제는 해양 생태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먹이 사슬을 통해 미세 플라스틱이 축적되어 결국 우리 식탁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미래를 위한 약속: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글로벌 및 국내 노력
전례 없는 생물다양성 위기 앞에서 국제 사회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공동의 인식 아래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파괴된 생명의 그물망을 복원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야심 찬 약속과 실질적인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내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프레임워크: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2022년 12월,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생물다양성 보전 노력을 이끌 새로운 청사진이다.50 GBF의 핵심 임무는 “2030년까지 생물다양성 손실을 멈추고 되돌려 자연을 회복의 길로 올려놓는 것(halt and reverse biodiversity loss)”이다.52
GBF의 23개 실천 목표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30×30 목표’**로 알려진 제3번 목표다. 이는 2030년까지 전 지구 육상 및 해양 면적의 최소 30%를 효과적으로 보전하고 관리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51 이는 단순히 보호구역의 면적을 넓히는 것을 넘어, 생태적으로 대표성을 띠고 잘 연결되어 있으며, 공정하게 관리되는 질적 향상을 동시에 추구한다.55 과학자들은 30%라는 수치가 생태계 서비스를 유지하고 대규모 멸종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평가한다.55
보전 전략: 현지 내 보전과 현지 외 보전
생물다양성 보전 노력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현지 내 보전(In-situ conservation): 생물종을 원래의 서식지 내에서 보호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30×30 목표’에 따른 보호지역 확대가 대표적인 현지 내 보전 전략이다.53
- 현지 외 보전(Ex-situ conservation): 생물종이나 유전 자원을 서식지 밖의 시설에서 보호하는 방법이다. 동물원, 식물원, 종자은행(Seed bank)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서식지가 파괴되었거나 개체수가 급감하여 현지 내 보전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종들에게 마지막 피난처를 제공한다.20
한국의 보전 노력 사례
- 사례 1 (현지 내 보전):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
한반도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던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기 위한 이 프로젝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현지 내 보전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04년부터 러시아, 북한 등에서 도입된 개체들을 지리산에 방사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자연 출산을 통해 3세대 새끼까지 태어나는 등 안정적인 개체군을 형성하고 있다.56 2019년 기준 69마리 이상이 서식하며 최소 존속 가능 개체군(MVP) 목표인 50마리를 조기에 달성했다.56 반달가슴곰은 씨앗을 퍼뜨리는 등 산림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핵심종(keystone species)이자, 넓은 서식지를 필요로 하는 우산종(umbrella species)으로서, 곰의 복원은 지리산 생태계 전체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다만, 소수 우세 수컷에 의한 번식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과제도 남아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요구된다.56 - 사례 2 (현지 외 보전):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경상북도 봉화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시드볼트(Seed Vault)’는 기후 변화,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부터 식물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세계적 수준의 종자 영구 저장 시설이다.58 이는 식물판 ‘노아의 방주’에 비유되는 중요한 현지 외 보전 시설이다. 지하 46m의 터널형 구조로 설계되어 외부 충격과 환경 변화로부터 씨앗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으며, 전 세계 야생 식물 종자를 무상으로 보관하며 인류의 미래 식량 자원과 생물다양성을 위한 최후의 보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앞서 강조한 유전적 다양성을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의 결실이다.
결론: 자연과 공존하는 미래를 향하여
생물다양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 속에서 다른 모든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 그물망이 찢어질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인류 자신이다. IPBES 보고서가 경고한 전례 없는 위기와 세계은행이 예측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평소와 같은 사업’ 방식이 더는 지속 불가능함을 명백히 보여준다.25 이제 우리는 자연을 착취의 대상이 아닌, 우리 경제와 웰빙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자본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59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사회 모든 구성원의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 정부와 정책 입안자: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의 ’30×30 목표’와 같은 국제적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국가생물다양성전략(NBSAPs)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행동 계획으로 전환해야 한다.51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보조금을 개혁하고,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환경 법규를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60
- 기업과 산업계: 기업들은 자신들의 사업 활동과 공급망 전반이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과 의존도를 투명하게 평가하고 공개해야 한다.63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와 같은 프레임워크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재생 가능한 원료 사용, 순환 경제 모델 도입 등 자연에 긍정적인(Nature-positive) 비즈니스로 전환해야 한다.
- 개인과 시민 사회: 우리 각자의 일상 속 선택이 모여 거대한 변화를 만든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을 소비하고, 육류와 팜유 소비를 줄이며,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하는 등 책임감 있는 소비 습관이 필요하다.65 또한, 지역의 환경 보호 활동에 참여하고, 생물다양성 보전의 중요성을 주변에 알리며, 더 강력한 환경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66
한국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과 백두대간 시드볼트는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다. 위기는 심각하지만, 아직 길은 있다. 생물다양성 보전은 미래 세대에 대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자, 인류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향한 여정에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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