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업계 단체 SEMI가 중동 전쟁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공급에 심각한 차질은 없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카타르 헬륨 생산 중단과 이스라엘산 소재 의존이라는 이중 리스크 속에서, 코로나 이후 확대된 안전 재고와 조달처 다변화가 완충 역할을 한다는 판단이다. 다만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SEMI, “단기 공급 우려 없다” 공식 입장 발표

SEMI(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가 2026년 3월 19일 대만에서 공식 브리핑을 열고, 중동 분쟁이 반도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테리 차오(Terry Tsao) SEMI 글로벌 CMO 겸 대만 회장은 “단기적으로 공급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는다(In the short term, I think we are not seriously worried about supply)”고 말했다. 클라크 쩡(Clark Tseng) SEMI 애널리스트는 한발 더 나아가 “중동 분쟁은 석유화학 생산자에게는 블랙스완이지만, 반도체 생산자에게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SEMI 측은 이란 전쟁이 4~6주 내에 해결될 경우 핵심 소재 공급에 실질적인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 같은 자신감의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업계 전반에 걸쳐 확대된 안전 재고 전략, 호주와 미국 등으로의 조달처 다변화, 그리고 헬륨 재활용 기술의 상용화가 자리 잡고 있다.

카타르 헬륨 위기, 반도체 공급망의 숨은 뇌관

SEMI의 낙관적 전망과 별개로, 현장의 불안 요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카타르는 글로벌 헬륨 생산의 약 33%를 담당하는 세계 2위 LNG 공급국이다. 그런데 2026년 3월 2일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카타르 라스 라판(Ras Laffan) 산업단지가 가동을 중단했고, 카타르 정부는 3월 4일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공식 선언했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웨이퍼 냉각과 리소그래피 장비 운용에 필수적인 소재로, 대체재가 사실상 없다. 이미 헬륨 현물가는 10~15% 상승했으며, DDR5 16Gb D램 현물가는 보름 만에 30% 급등하는 등 시장은 선제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필 콘블루스(Phil Kornbluth) 헬륨 컨설팅 대표는 “최소 2~3개월 헬륨 생산 중단이 불가피하며, 정상화까지 4~6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SEMI가 가정한 ‘4~6주 내 전쟁 종결’ 시나리오와 상당한 괴리가 있는 전망이다.

핵심 지표 수치
2025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 7,917억 달러(약 1,148조 원)
2026년 전망 9,754억~1조 달러(약 1,414조~1,450조 원)
카타르 글로벌 헬륨 생산 비중 약 33%
한국 카타르 헬륨 수입 의존도 64.7%
한국 이스라엘산 HBr 의존도 97.5%
DDR5 D램 현물가 상승폭 보름 만에 30%
삼성+SK하이닉스 시가총액 감소 2,000억 달러 이상(약 298조 원)
TSMC 헬륨 안전 재고 약 6개월분

SEMI 낙관론의 다섯 가지 근거

SEMI가 “공급 부족 없다”고 판단한 데는 다섯 가지 구체적 근거가 있다. 첫째, 코로나19 대란을 겪은 반도체 업계가 안전 재고를 대폭 확대했다. 윌리엄 베빙턴(William Bevington) 제프리스(Jefferies)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TSMC는 현재 약 6개월분의 헬륨 안전 재고를 보유하고 있다. 둘째, 주요 팹들이 호주와 미국 등으로 헬륨 조달처를 다변화했다. 셋째, 헬륨 재활용(리사이클링) 기술이 실제 가동 중이어서 신규 공급이 줄어도 기존 재고의 활용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넷째, 2026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이 9,754억 달러(약 1,414조 원)에서 1조 달러(약 1,45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수요 자체가 워낙 강력해, 일시적 소재 비용 상승이 산업 전체의 성장 궤도를 꺾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다섯째, 전쟁이 4~6주 내에 종결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다만 이 마지막 가정이야말로 가장 큰 불확실성 요인이다.

한국 반도체, 이중 리스크에 노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이번 중동 사태에서 특히 취약한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카타르 헬륨 수입 의존도는 64.7%로, 대만이나 일본보다 훨씬 높다. 더 심각한 것은 브롬 리스크이다. 반도체 식각 공정의 핵심 소재인 고순도 브롬화수소(HBr)의 한국 수입 의존도가 이스라엘에 97.5%에 달한다.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확전될 경우, 헬륨과 브롬화수소라는 두 가지 핵심 소재가 동시에 차단될 수 있는 ‘이중 병목’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이미 2,000억 달러(약 298조 원) 이상 감소했다. 반면 대만은 LNG 비축량이 11일에 불과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는 한국(52일)보다 취약하지만, TSMC의 6개월분 헬륨 재고와 같은 개별 기업 차원의 대비가 돋보인다. 한국과 대만은 각각 글로벌 반도체 생산의 18%를 차지하고 있어, 두 국가의 공급망 리스크는 곧 세계 반도체 시장의 리스크이기도 하다.

중국의 부상과 공급망 재편 시사점

주목할 변수는 중국의 움직임이다. 중국 광둥화터가스(Guangdong Huate Gas)가 6N(99.9999%) 초고순도 헬륨 양산에 성공하고 ASML 인증까지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중국산 헬륨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재로 부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도체 소재의 지정학적 재편이 가속화되는 셈이다. 202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약 26% 성장해, 기존에 2030년으로 예상했던 1조 달러 시대를 4년이나 앞당길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의 엔진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 엔진을 돌리는 소재 공급망은 지금 가장 취약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 SEMI의 “공급 부족 없다”는 진단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카타르 헬륨 64.7%, 이스라엘 브롬화수소 97.5%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소재 조달처 다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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