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당파 상원의원이 상무부에 엔비디아(NVIDIA) AI칩 수출허가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슈퍼마이크로 공동창업자의 25억 달러 규모 밀수 기소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젠슨 황 CEO의 “칩 전용(轉用) 증거 없다” 발언이 정면으로 반박당하며,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초당파 서한, “모든 수출허가를 즉시 중단하라”
2026년 3월 24일,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민주당·매사추세츠) 상원의원과 짐 뱅크스(Jim Banks, 공화당·인디애나) 상원의원은 하워드 루트닉(Howard Lutnick) 상무장관에게 공동 서한을 발송했다. 두 의원은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에 “엔비디아의 첨단 AI칩 및 서버 시스템에 대한 모든 활성 수출허가를 즉시 일시 중지·정지하거나,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대상 지역은 중국 본토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중간 경유국까지 포함한다. 서한에서 워런 의원은 “말레이시아의 페이퍼컴퍼니나 태국의 위장 법인을 통해 베이징에 도달하는 칩 한 개 한 개가, 애초에 미국을 떠나서는 안 될 칩”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서한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함께 서명한 초당파적 행동이라는 점에서, AI칩 수출 통제가 미국 정치권의 당파를 초월한 국가안보 의제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슈퍼마이크로 25억 달러 밀수 사건의 전말
서한의 직접적 계기는 2026년 3월 19일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공개된 슈퍼마이크로(Super Micro Computer) 관련 기소장이다. 공동창업자 야시안 “월리” 리아우(Yih-Shyan “Wally” Liaw, 71세), 대만 사무소 총괄매니저 루이창 “스티븐” 창(Ruei-Tsang “Steven” Chang, 53세), 중개인 팅웨이 “윌리” 손(Ting-Wei “Willy” Sun, 44세) 등 3명이 수출통제법 위반 공모, 밀수, 미국 정부 사취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약 25억 달러(약 3조 6,250억 원) 규모의 엔비디아 GPU 탑재 서버를 중국으로 불법 전용했다. 특히 2025년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단 3주 만에 약 5억 달러(약 7,250억 원) 규모의 서버가 집중적으로 빠져나갔다.
| 항목 | 내용 |
|---|---|
| 기소일 | 2026년 3월 19일 |
| 피고인 | 슈퍼마이크로 공동창업자 등 3명 |
| 밀수 규모 | 약 25억 달러(약 3조 6,250억 원) |
| 활동 기간 | 2024~2025년 |
| 밀수 방식 | 동남아 위장법인, 허위 서류, 더미 서버 |
| 경유국 |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
| 슈퍼마이크로 주가 영향 | 기소 당일 33% 급락 |
밀수 수법은 정교했다. 동남아시아 소재의 위장 회사(pass-through company)가 마치 자사 용도인 것처럼 슈퍼마이크로에 발주하면, 서버는 미국에서 조립된 뒤 대만 시설로 이송됐다. 이후 동남아 거점에서 식별 표시가 제거된 무표기 상자에 재포장돼 최종 목적지인 중국으로 배송됐다. 감사관을 속이기 위해 창고에 더미(dummy) 서버를 배치하고, 헤어드라이어로 일련번호 스티커를 떼어내 가짜 서버에 옮겨 붙이는 수법까지 동원됐다. 감사관에게는 접대 비용을 제공해 현장 실사를 건너뛰게 한 정황도 포착됐다. 존 아이젠버그(John A. Eisenberg) 법무차관보는 “허위 서류, 더미 서버를 이용한 검사관 기만, 복잡한 환적 경로 등이 동원됐다”고 밝혔다.
젠슨 황 CEO의 “전용 증거 없다” 발언, 정면 반박
이번 서한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엔비디아 젠슨 황(Jensen Huang) CEO에 대한 직접적 비판이다. 황 CEO는 2025년 공개 석상에서 “AI칩 전용의 어떠한 증거도 없다(There’s no evidence of any AI chip diversion)”며, 그레이스 블랙웰(Grace Blackwell) 시스템이 거의 2톤에 달해 물리적으로 전용이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워런·뱅크스 의원은 서한에서 이 발언이 “단순히 사후적으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당시 이미 확보 가능했던 정보에 의해 반박되는 것이었으며, 미국 관리들을 잠재적으로 오도했다(were not simply wrong in hindsight; they were contradicted by reporting available at the time and potentially misled U.S. officials)”고 지적했다. 실제로 슈퍼마이크로 밀수 사건의 활동 시기(2024~2025년)는 황 CEO가 해당 발언을 한 시점 이전에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의원들은 엔비디아의 자체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이 불법 전용을 탐지하지 못한 점을 문제 삼으며, 동남아시아 고객에 대한 감시조차 실패한 기업이 중국 직거래를 모니터링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더 넓은 밀수 네트워크와 수출 통제의 구조적 한계
슈퍼마이크로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별도의 밀수 사건에서는 텍사스 소재 페이퍼컴퍼니 하오 글로벌(Hao Global LLC)의 앨런 하오 쑤(Alan Hao Hsu), 전 IBM 엔지니어 판위에 공(Fanyue Gong) 등이 약 1억 6,000만 달러(약 2,320억 원) 규모의 H100·H200 GPU 7,000개 이상을 중국으로 빼돌리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레노버(Lenovo)로부터 구매한 칩의 엔비디아 라벨을 가짜 “샌드키안(SANDKYAN)” 브랜드로 교체하고, 수출 서류에 ‘어댑터’로 허위 기재하는 등의 수법을 사용했다. AI 정책 분석가 레나트 하임(Lennart Heim)은 “이 사건이 제기하는 질문은, 이들 같은 사람이 얼마나 더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AI 정책전략연구소의 에리히 그뤼네발트(Erich Grunewald)는 “기회주의적으로 밀수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통제 완화와 의회의 역풍
이번 의회의 압박은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 통제 완화 기조와 정면 충돌한다. 2026년 1월,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엄격한 수출 규제 초안을 철회하고, 건별 심사(case-by-case review) 방식으로 전환했다. 상무부는 2월 말 엔비디아에 H200 칩의 대중국 수출 허가를 부여했으며, 바이트댄스(ByteDance),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 등 중국 기업이 총 40만 개 이상의 H200 칩을 구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엔비디아와 미국 반도체 업계는 수출 통제로 인해 수십억 달러의 매출이 감소하고, 중국의 자체 반도체 개발을 오히려 가속화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슈퍼마이크로 기소 이후 의회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초당파 의원들이 수출허가 중단을 요구하면서, 행정부의 완화 기조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엔비디아 측은 “엄격한 규정 준수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히면서도, 비판자들이 해외 경쟁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과 수출 통제의 시사점
미국의 대중국 AI칩 수출 통제 강화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GPU에 탑재되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의 핵심 공급자다. 수출허가가 중단되면 엔비디아의 대중국 GPU 출하가 감소하고, 이에 따른 HBM 수요 변동이 한국 메모리 업체의 실적에 반영될 수 있다. 동시에 동남아시아 경유 밀수 루트가 차단되면 한국 기업이 위치한 공급망의 규정 준수 비용도 증가할 전망이다. AI칩 수출 통제는 단순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전체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재편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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