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력 확보에 난항을 겪던 애플이 결국 독자 노선을 수정하고 ‘적과의 동침’을 선택했다. 지난 1월, 애플은 자사 음성 비서 ‘시리(Siri)’에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통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관련 기사)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이번 계약 규모는 연간 약 10억 달러(약 1조 3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애플은 “최초는 아니지만, 최고를 지향한다(Not first, but best)”는 철학을 고수해 왔다. 시장 진입은 늦더라도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 판을 뒤집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AI 경쟁에서는 이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가장 큰 원인은 인프라와 데이터 처리 방식의 차이였다. 애플은 경쟁사 대비 그래픽 처리 장치(GPU) 등 핵심 연산 자원 확보에 뒤처졌으며, 사용자 데이터를 기기 내에서 처리하는 ‘온디바이스(On-device)’ 중심의 프라이버시 정책은 고성능 AI 구동에 있어 속도와 기능 확장의 발목을 잡았다. 이는 제품 중심 조직과 AI 연구 조직 간의 내부 갈등으로 비화되었고, 리더십 교체와 구조 개편이라는 혼란을 야기했다.
이러한 기술적 지체는 제품 경쟁력 약화로 직결됐다. 2024년 출시된 아이폰 16은 “애플 인텔리전스를 위해 설계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실제 핵심 기능이 탑재되지 않은 채 출시되어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시리(Siri)의 성능 개선이 2025년 상반기까지도 답보 상태에 머무르자 시장의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지난 1월 8일, 알파벳(구글 모회사)이 애플을 제치고 시가총액 2위를 탈환한 사건은 AI 주도권이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존 지아난드레아(John Giannandrea) AI 부문 수석 부사장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것도 이 시점이다.
소프트웨어의 난조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하드웨어 생태계는 건재했다. IDC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의 2025년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폰 17 라인업의 사전 주문량은 전작을 상회했으며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10% 성장이 전망된다.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가 AI 실망감을 상쇄한 셈이다.
애플은 이 시간을 벌어 외부 파트너십을 통한 승부수를 띄웠다. 2025년 하반기부터 자체 모델 고집을 꺾고 외부 파트너를 물색해 온 애플은 최종적으로 구글의 손을 잡았다. 이번 협력의 핵심은 구글 제미나이 모델을 애플의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구동하는 것이다. 이는 애플이 고수해 온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시리의 지능을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절충안으로 평가받는다.
애플 인텔리전스의 재건이 시작되었지만, 과제는 여전하다. 단순한 기능 통합을 넘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진짜 효용’을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전 애플 디자인 총괄 조니 아이브(Jony Ive)가 오픈AI(OpenAI)와 손잡고 새로운 AI 하드웨어를 개발 중인 상황에서, 애플은 아이폰이 여전히 최고의 AI 디바이스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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